사람들은 흔히들 "바쁜게 좋은거다"라고 말들을 하지요.
번뇌하는 자기자신을 잊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는 맞는 말일겁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겠죠. 좀 더 똑똑하게 있어서
자기자신과 대면해야만 합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죠... 적어도 몸은 바쁘더라도 의식은
몸이 바삐 돌아가는 그 황망함에 휩쓸려서는 아니되겠지요.
그릇이 크신(이런 표현을 내다니 건방지구먼 ^^;;; 그래도 좋은 의도로)
해피님이 눈코 구별없이 바쁘시다 하니, 다소 안타깝기만 하군요.
그래도 고 계시겠지요? ^^
칼리-Kali는 인도의 여신 이름이랍니다. 인도의 대표적인 신인 쉬바가
파괴의 신인데, 칼리는 그의 아내죠. 근데 무섭습니다... 죽음의 여신이
거든요. 그런데 왜 제가 칼리라는 닉네임을 쓰느냐...? 꽤 오래 됐는데...
한 5년 됐나봅니다.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것 같네요.
사람들은 무작정 죽음을 두려워하지요.
죽음 그 자체가 두려운 것인가요 아니면 죽을때의 고통이 두려운 것인가요
그도저도 아니면 죽을 때는 마땅히 극한의 고통을 느끼리라는 선입견으로
인해 두려운 것인가요?
고통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요. 그렇다면 오히려 죽음은 새롭고 신선한
경험일수도 있지 않나요? 소크라테스가 죽을 때 그런 마음으로 죽었다고 그랬
던가요?
하지만 사람들은 막연히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또한 삶조차도 두려워합니다.
살아있는듯이 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가지요. 그러면서 한발 한발
죽음을 향해 다가갑니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대중의) 보편적인 두려움은 제대로 살지 못하는
부지불식간에 얻게되는 그러한 완전치 못한 삶에 대한 두려움과 동격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서 본 완전한 삶... 이었습니다. ^^
제가 좋아하는 글 다시 한번 남길랍니다. ^^
만일 내가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다음 번에는 더 많이 실수하려고 노력하리라. 아침마다 체조를 하고 휴식을 즐기리라. 그리고 이번 여행보다 더 미친듯이 여행하리라. 나는 더 이상 눈앞에 있는 것들에 얽매이지 않으리라. 더 많은 모험을 하고, 더 많은 여행을 하고, 더 많은 산들을 오르고, 더 많은 강들을 헤엄치리라. 강낭콩보다는 아이스크림을 더 많이 먹으리라.
지금까지 나는 체온계와 뜨거운 물과 구강청정제와 레인코트와 낙하산이 없으면 아무데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만일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나서리라. 이른 봄 어느날 맨발로 출발하리라. 나는 인생의 환락을 더 많이 즐기고, 결혼반지를 더 많이 받아보고, 더 많은 사람들과 인사하고, 더 많은 꽃을 꺾고, 더 많이 춤을 추리라. 만일 내가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 박근수(mcrane@korea.com) : 꿩 대신 닭 05/07 ─┼
│
│
│ 해피 어른님 사업상 무지하게 바빠 눈 하고 코 하고 구별이 없을 뿐 아니라
│ 밥 때도 모르고 지내신다 하시니 닭이 맥도 모르고 이리 저리 황망합니다.
│ - 봉사가 침 통 헌들어-
│
│ 칼리(무슨 뜻?..)님
│ 나나님..
│ 이 때 좋은 말씀을..
│
│ 비가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 하늘은 하늘 바다는 바다..
│
┼ ┼
번뇌하는 자기자신을 잊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는 맞는 말일겁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겠죠. 좀 더 똑똑하게 있어서
자기자신과 대면해야만 합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죠... 적어도 몸은 바쁘더라도 의식은
몸이 바삐 돌아가는 그 황망함에 휩쓸려서는 아니되겠지요.
그릇이 크신(이런 표현을 내다니 건방지구먼 ^^;;; 그래도 좋은 의도로)
해피님이 눈코 구별없이 바쁘시다 하니, 다소 안타깝기만 하군요.
그래도 고 계시겠지요? ^^
칼리-Kali는 인도의 여신 이름이랍니다. 인도의 대표적인 신인 쉬바가
파괴의 신인데, 칼리는 그의 아내죠. 근데 무섭습니다... 죽음의 여신이
거든요. 그런데 왜 제가 칼리라는 닉네임을 쓰느냐...? 꽤 오래 됐는데...
한 5년 됐나봅니다.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것 같네요.
사람들은 무작정 죽음을 두려워하지요.
죽음 그 자체가 두려운 것인가요 아니면 죽을때의 고통이 두려운 것인가요
그도저도 아니면 죽을 때는 마땅히 극한의 고통을 느끼리라는 선입견으로
인해 두려운 것인가요?
고통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요. 그렇다면 오히려 죽음은 새롭고 신선한
경험일수도 있지 않나요? 소크라테스가 죽을 때 그런 마음으로 죽었다고 그랬
던가요?
하지만 사람들은 막연히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또한 삶조차도 두려워합니다.
살아있는듯이 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가지요. 그러면서 한발 한발
죽음을 향해 다가갑니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대중의) 보편적인 두려움은 제대로 살지 못하는
부지불식간에 얻게되는 그러한 완전치 못한 삶에 대한 두려움과 동격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서 본 완전한 삶... 이었습니다. ^^
제가 좋아하는 글 다시 한번 남길랍니다. ^^
만일 내가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다음 번에는 더 많이 실수하려고 노력하리라. 아침마다 체조를 하고 휴식을 즐기리라. 그리고 이번 여행보다 더 미친듯이 여행하리라. 나는 더 이상 눈앞에 있는 것들에 얽매이지 않으리라. 더 많은 모험을 하고, 더 많은 여행을 하고, 더 많은 산들을 오르고, 더 많은 강들을 헤엄치리라. 강낭콩보다는 아이스크림을 더 많이 먹으리라.
지금까지 나는 체온계와 뜨거운 물과 구강청정제와 레인코트와 낙하산이 없으면 아무데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만일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나서리라. 이른 봄 어느날 맨발로 출발하리라. 나는 인생의 환락을 더 많이 즐기고, 결혼반지를 더 많이 받아보고, 더 많은 사람들과 인사하고, 더 많은 꽃을 꺾고, 더 많이 춤을 추리라. 만일 내가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 박근수(mcrane@korea.com) : 꿩 대신 닭 0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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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 어른님 사업상 무지하게 바빠 눈 하고 코 하고 구별이 없을 뿐 아니라
│ 밥 때도 모르고 지내신다 하시니 닭이 맥도 모르고 이리 저리 황망합니다.
│ - 봉사가 침 통 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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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리(무슨 뜻?..)님
│ 나나님..
│ 이 때 좋은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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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 하늘은 하늘 바다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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