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변화(단식나눔) 글수 7,261

道可道 非常道 이름: 박근수 · 2001-07-26 07:55 · 조회 9
기억력과 예민함과 재치가 두루두루...

마그밀 먹는 양은 뱃속의 기별로 알아 채면 됩니다.
보통 한 시간 안에 소원성취하는 양으로 조절하시면
됩니다. 날마다 드실일은 아니고요.

도덕경 1장은 어떻게 다르게 해석되었는지 궁금해지네요
그 김 선생이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에서 번역문제를
느낌오게 다루었습니다.(89.12. 초판 )

많이 알면 무거워 지는 데 자랑하고픈 욕구를 억제하기도
어려운가 봅니다. 테레비에 낯이 알려지면 저절로 권력화
되어진다는군요 제 입으로 무위라(대화 91.3 초판)그래놓고...

정혜인 · 2001-07-26

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합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

此兩者同 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 지으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을 천지의 처음이라 하고
이름이 있는 것을 만물의 어미라 한다.
그러므로 늘 욕심이 없으면 그 묘함을 보고
늘 욕심이 있으면 그 가장자리를 본다.
그런데 이 둘은 같은 것이다.
사람의 앎으로 나와 이름만 달리 했을 뿐이다.
그 같은 것을 일컬어 가물타라고 한다.
가물코 또 가물토다.
모든 묘함이 이 문에서 나오지 않는가!

도(는 그 이름을)를 도라고 해도 좋겠지만
(그 이름이) 꼭(항상) 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이름으로 (어떤 것의)이름을 삼을 수는 있지만
꼭(항상) 그 이름이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천지의 시작이니 따질 수 없고
(우리가)이름을 붙이면 만물의 모태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니
이름을 붙이기 전(도의 이전)에는 (천지지시의) 묘함을 보아야 하지만
(※묘함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름을 붙인 후(도의 이후)에야 그것의 요(실상계의 모습)를 파악할 수 있느니라.
이 두 가지는 똑같은 것인데
다르게 보이는 것은 그 이름뿐이니
(도 이전의 세계와 도 이후의 세계가) 검기는 마찬가지여서
이것도 검고 저것도 검은 것이니
(도와 도 이전의 무엇은 같은 것이니라)
도는 모든 묘함이 나오는 문이니(지금부터 그것을 말하려 하느니)라.

알 만하지요?
도올이 얼마나 헛소리를 해댔는지...
일반인들에게 동양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점수를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강의가 뜨도록 내버려둔 우리 사회가 한심합니다.

박근수 · 2002-07-25

나이 서른이 넘은 단식은 아무래도 목적한 바 있으니
한 번에 주변까지 다 살피시게 되는 것 같습니다.....

중간에 생수로 변경하신거는 잘 판단하신 것으로 보입니다만
마그밀 작용이 아니고도 설가가 계속된다면 드시는 물에 의심이
갑니다. 의도하는 泄瀉(설사)는 시원하기는 합니다만..

견딜만 하시면 열흘(노상하기도 어려운 계기이고 보니)정도로
하여 보심이 어떠까 싶습니다.

몸을 힘써 바짝 말리면 말릴수록 음식은 더 맛있고 식욕은 점점
더 왕성해 지는데 이 끈을 놓지 않기가 쉽지는 않습니다만 믿음이
갑니다 상욱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