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먹을거리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비단 지금 단식을 하고 있어서 더욱 소중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닐것이다.먹기위해 사느니 살기위해 먹느니 하는것은 너무나 유치한 말들이다.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신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삶은 언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다.마치 맑디맑은 푸르른 하늘과 ,가슴속 뜨거운 정열로 불타오르는 푸릇푸릇한 청춘남녀의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을 언어로 표현하는것이 얼마나 힘든것인지를 뼈저리게 절감하듯이.우리의 삶이 하나의 신비이듯이 삶을 유지해주고 이끌어가는 자실거리야 말로 너무나 소중하다.가끔 제가 읽는 글중에서 먹거리라는 단어를 자주만나게 돼서 아랫글을 올립니다.
인간의 언어란 그 나름대로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법칙이 있고, 또 의미론적으로나 성운학적으로 또 통사론적으로 가장 합당하고 가장 아름다운 말을 선택해서 써야하는 것이다.
“먹거리” 같은 말은 전혀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고, 최근세에 무식한 자들에 의해 날조된 매우 천박한 非國語이다. “먹을거리”는 가능한 말이래도 “먹거리”란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어떻게 동사의 어간이 관형사형 어미가 없이 직접 명사에 붙을 수 있는가? “하다”에서 “하일”이 가능한가? “할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먹거리”가 우리말이라면 ,옷은 “입거리”가 되어야 하고, “볼거리”는 “보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의 합성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단순히 우리말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왜 하필“먹다”라는 천박한 느낌의 말을 어간으로 선택해야 하는가? “자실 거리”라 해도 될 것이요, 얼마든지 다른 좋은 표현이 있을 것이다. 漢語를 피한다 해서 천박한 우리말을 선택하는 것은 단순한 타락이요, 우리 언어생활의 격조의 하락일 뿐이다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강해 중에서-
인간의 언어란 그 나름대로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법칙이 있고, 또 의미론적으로나 성운학적으로 또 통사론적으로 가장 합당하고 가장 아름다운 말을 선택해서 써야하는 것이다.
“먹거리” 같은 말은 전혀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고, 최근세에 무식한 자들에 의해 날조된 매우 천박한 非國語이다. “먹을거리”는 가능한 말이래도 “먹거리”란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어떻게 동사의 어간이 관형사형 어미가 없이 직접 명사에 붙을 수 있는가? “하다”에서 “하일”이 가능한가? “할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먹거리”가 우리말이라면 ,옷은 “입거리”가 되어야 하고, “볼거리”는 “보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의 합성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단순히 우리말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왜 하필“먹다”라는 천박한 느낌의 말을 어간으로 선택해야 하는가? “자실 거리”라 해도 될 것이요, 얼마든지 다른 좋은 표현이 있을 것이다. 漢語를 피한다 해서 천박한 우리말을 선택하는 것은 단순한 타락이요, 우리 언어생활의 격조의 하락일 뿐이다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강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