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라 움직이기
6월 23일
간간이 위통이 온다, 며칠째 잠도 모자랐고, 머리 속이 복잡해진 탓이다. 두렵다.
가끔 지지난 해 겪었던 위경련의 고통이 악몽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멋모르고 놓는 첫째보다 둘째 놓을 때가 더 떨린다고 하더니, 그 짝이다.
저녁이 되자 더 심해졌다.
단식을 생각해 본다.
6월 24일
단식 이야기를 꺼내자 남편이 더 좋아한다.
아마도 담배까지 끊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 듯.
엄마는 걱정부터 하신다.
굶는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려고 하질 않으신다.
식사 걱정을 했더니 알아서 챙겨 먹을 터이니 그건 걱정 말란다.
단식 하는 사람이 문제지 우리가 뭔 문제냐고..
잠깐 집에 들른 아들은 많이 아프냐고, 그러면 하는 게 좋지 뭐, 그런다.
배가 아파 제대로 먹지 못하는 지금이나 단식이나 별 차이도 없겠건만 그래도 아직은 그래 하자!,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덜 아프다는 이야기겠지.
6월 25일
본단식 시작
어제 밤에는 힘도 없고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픈데, 비는 또 왜 그렇게 쏟아지는지..
이래저래 잠을 설쳤다.
밤을 샌 남편의 이른 아침식탁에서 김치 한 조각을 씹어본다.
정말 맛이 없다.
평소에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무렴, 이렇게 맛이 없을 수가, 자연스럽게 말이 튀어나왔다.
'나, 시작해야겠어.'
예비단식도 없이 바로 본단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하자고 할 때 해야지.
6월 26일
본단식 이틀째.
굶었다 먹었다, 워낙 규칙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먹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고통은 별로 없다.
문제는 담배다.
두통이 참아내기 힘들 정도다.
그야말로 쥐어뜯고 있다.
담배 때문일까?
음식물이 들어가지 않으니 오히려 배는 아프지 않다.
몸이 무겁고 이가 아프다.
이와 이 사이에서 니코틴이 줄줄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야말로 느낌이겠지.
뭔가 좋지 않은 게 녹아내리고 있는 건 확실하다.
치주염 초기단계라고 했으니 잇몸에서 좋지 않은 것들이 빠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잇몸이 부어 더 아프다.
간간이 위통도 있다.
날씨 탓인지 여러해 전에 교통사고로 다친 다리도 아프다.
날씨가 흐리면 간혹 있는 일이긴 하지만.
평소에 물을 많이 마시는 습관이 있는데도 물을 마시는 것이 힘이 든다.
물도 꼭꼭 씹어먹듯이 마시라고 했는데 잘 되지 않고 있다.
그저 한 입씩 삼키고 있다.
속이 메스껍고 헛구역질을 하는 것이 꼭 애가 들어선 느낌이다.
속이 한번 뒤집어지면 한동안 힘이 쫙 빠지는 것이 기운이 하나도 없다.
노숙자 소식지 만드는 일을 급하게 해달란다.
망설이다가 그냥 해주기로 했다.
차라리 일을 하면 잊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에
다른 것도 아니고 이 사회에서 소외된 노숙자들의 소식지를 만든다는데,
해주기로 했다.
문제는 시간인데 이틀은 족히 걸리겠다.
마음을 다잡고 원고들을 훑어본다.
늦도록 일을 했다.
언제나처럼 일이 시작되면 아픈 것도 모르고 한다.
일 끝나면 뻗겠지만 그래도 앉아 있을 만하다.
6월 27일
본단식 3일째
새벽까지 일을 했다.
아무래도 무리다.
으슬으슬 춥다. 옥매트에 불을 올리고 두꺼운 이불을 덮었다.
침대에 누웠는데 금새 잠이 들었다.
12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멍한 것이 여기가 어딘지 잠시 생각해 본다.
그래, 우리집, 침대 위잖아.
이렇게 황당할 때가 가끔씩 있다.
우리집 전화번호나 핸드폰 번호가 생각나지 않을 때처럼.
입이 마르다.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이게 아닌데, 다시 속도를 늦춘다.
천천히, 천천히, 한모금씩, 한모금씩.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 보내오기로 한 원고가 다 와야 마무리를 할 텐데, 아직 연락이 없다.
앉아 있기가 힘들어서 원고가 마저 오면 일을 시작하기로 한다.
다시 누웠다.
이때쯤이면 배고픈 것이 힘들어 통닭이 오락가락한다는데 나는 전혀 식욕을 느낄 수가 없다. 잘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암튼 배고픔으로 고통스럽지 않은 건 다행이다.
정말 힘이 없다.
앉아 있기도 힘이 드는데 왜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일까?
답답한 느낌 떄문인 것 같다.
주방 옆에만 가도 나는 이상한 냄새들 때문에 괴롭다.
목욕탕도 마찬가지.
사람 냄새도 마찬가지.
토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게 만든다.
워낙에 비위가 약해 평소에도 종종 왝왝거리고 다니지만. 더 심하다.
목에 뭐가 걸린 듯한 느낌이 들면서 간간이 기침이 난다.
가래다.
검고 누렇고 끈적끈적한 것이 뭉글뭉글 뭉쳐서 나온다.
남편과 함꼐 산책을 가기로 했다.
마음뿐이지 다리가 떨리고 무릎이 탁탁 접히는 것이 50미터를 못가서 주저앉는다.
구역질이 나면서 속이 다 뒤집히고 쓴물 같은 것이 올라온다.
가슴에도 통증이 온다. 숨이 가쁘고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상처가 없었는 데도 치질이 다시 말썽이다. 우리하게 아픈 것이 안에서 탈이 난 모양이다.
지난 봄에 치질 수술을 하겠다고 큰맘 먹고 병원을 찾았었다.
아이 낳고 생긴 것이니 벌써 18년째 달고 산다.
종일 앉아서 원고와 컴퓨터와 씨름을 해대니, 거기다가 변비까지 있었다.
삼년 전부터 소식하고, 커피를 줄인 뒤로 없어졌지만.
(변비와 커피가 관계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그 당시 내가 그랬었다는 이야기)
몇번이고 치질 수술을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병원 가서 질찰도 받아보았지만 그때마다 내키지 않아 관뒀다.
칼을 댄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기필코 수술을 해서라도 이 고통에서 벗어나리, 마음먹었는데 진료 후에 의사 말이 기가 찼다. 상태가 심각해서 레이저로는 도저히 안되고 근치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도 열흘 정도는 입원해야 하며, 통증이 매우 심해서 몰핀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열흘씩 되는 기간도 문제지만 몰핀이라니, 또 포기했다. 시간이 되면 언제 단식을 해서 완치시켜보자, 했다. 이번 단식의 목표는 그게 아니지만..
무리하면 안된다고 말리는 남편을 무시하고 잠시 쉬었다가 놀이터까지 갔다.
햇살도 바람도 좋다.
힘은 없지만 기분은 좋다.
속도 점점 가라앉았다.
구충제도 마그밀도 먹지 않고 시작한 터라 아직 변을 보지 못했다.
자기 전에 마그밀 6알을 먹었다.
속이 메스껍고 이상한 느낌의 복통이 살살 온다.
마그밀 때문인지 변을 보려고 그러는 것인지. 시원하게 볼일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몸무게는 하루 1킬로그램 정도씩 빠지고 있다.
살을 빼려고 한 단식은 아니지만 아랫배가 점점 작아지는 것이 몸매도 볼 만해지고 있다.
얼굴색도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누렇던 것이 내가 봐도 약간 뽀얀 듯하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잔잔한 것이 잘 나는 편인데 손으로 만져보니 얼굴 피부도 매끄럽다. 눈이 움푹 꺼진 것이 쌍거풀이 또렷해졌다. 속쌍거풀이라 평소엔 잘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그동안 부었거나 얼굴에 나이살이 붙은 탓이었을까?
아, 한 20년 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
깨끗한 피부에 늘씬한 몸매.
한때 그러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만은, 온통 찌들은 내 몸을 보면서 새삼 나이를 느끼고 세월을 느낀다. 혹사당하고 때로는 학대당한 몸을 생각하니 그 세월 속에 침전되어 있는 참으로 많은 원망들이 들려온다.
워낙 타고나길 건강하게 타고났는 데도, 큰병이 없는 데도, 자잘하게 아픈 것(위통, 편두통, 관절, 기관지, 치질, 치주염, 견비통), 들로 종종 힘들어하고, 무리하게 움직이고 나서 뻗어버리고, 술과 담배 가까이에 살고, 운동이라고는 근처에도 가지 않고(산에 다닌 지 이제 6개월째), 뭘 믿고 그랬는지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앞으로 잘할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독소들이 빠져나가는 기운을 느끼며 앞날을 생각해 본다.
6월 28일
본단식 4일째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도 온몸이 가렵다.
특별히 뭐가 난 것도 아닌데 매끈한 살이 그냥 가렵다.
샤워를 하고 나니 좀 낫다.
마그밀을 먹은 덕분에 화장실도 다녀왔다.
마지막엔 코울타르 같이 검고 끈적끈적할 것 같은 묽은 변도 보았다.
남들이 말하는 숙변이라는 것인지..
소변 색깔도 많이 맑아졌다.
뱃속이 편안하다.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 탓인가?
큰소리도 싫다.
냄새도 싫다.
특히 사람 냄새가 싫다.
남편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속상해 하는 남편을 보면서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마늘 냄새가 심하게 나는 걸, 입냄새도 마찬가지.
남편이랑 엄마는 나 떄문에 양치질도 여러 번 하고 매일 목욕하고 난리다.
느긋하게 너그럽게 마음가짐을 가져보려 하는데 뜻대로 잘 안된다.
이런 단순한 냄새들이 나를 자극하면 토할 듯 치밀어 오르는 것이 기분까지 엉망이 된다.
어떤 힘에 지배당한 느낌이다.
통제가 안되고 불쑥불쑥 오라오는 신경질.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면 정말 우울해진다.
몸을 함부로 대한 대가라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자신을 타일러본다.
근데 음식물을 먹지 않은 지 나흘짼데 이에 뭐가 이렇게 달라붙은 느낌이 드는지, 불쾌하다.
혀로 이의 표면의 감촉을 느껴보니 줄이 간 듯 우둘두둘하다.
다시 양치질을 해도, 박박 솔로 문질러도 소용이 없다.
혀에는 온통 백태가 하얗게 끼어 돌기 하나하나가 곤두선 느낌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실제로 돌기 하나하나가 커져서 끝이 하얗게 변한 것이 보인다
입속이니 크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근 20년을 피워 온 담배 탓이라고 생각한다.
오후에는 왼쪽 귀 아래, 목 주위에 이제까지 보지 못한 붉은 반점이 툭툭 불거지면서 가렵다. 기관지염을 앓은 적이 있고 겨울만 되면 목감기로 시달렸는데 그래서 그런가?
3년 전 위통 때문에 절로 소식을 하게 된 뒤로 건강도 좋아져서 기관지염도 덜 앓았는데, 올해는 다시 몸이 좋질 않다.
담배가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끊질 못하고 있다.
책상에만 앉으면 습관적으로 담배를 들게 된다.
안 그러면 집중이 잘 안되니깐.
제몸 하나 보살피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긴 하나 늘 그 경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6월 29일
본단식 5일째
위통도 두통도 온몸의 욱신거림도 미열도 치질의 통증도 사라지고,
남편 말처럼 하나씩 하나씩 지우개로 지워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이대로 계속 먹고 싶지 않은데, 단식을 연장할까 생각해 본다.
먹는데 대한 유혹이 전혀 느껴지질 않으니 더 한다고 해도 힘들 것 같지는 않다. 몸의 통증들도 서서히 사라져 가고 다른 이들이 말한 고요한 상태를 나도 느껴보고 싶다.
남편은 말린다. 제대로 한 단식은 처음이니(준비없이 사흘을 굶기도 하고 때론 먹는 것을 잊어버려 이틀을 굶기도 한다. 왜 이렇게 힘이 없지, 그러면 남편이 뭐 먹었냐고 물어본다. 그리고는 과식을 하고,, 그래봤자 하루 두 끼지만 소식(반 공기 정도)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조금만 많이 먹어도 위에 부담이 가서 소화가 안 되거나 설사를 하거나 그런다. 특히 신경이 예민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기면 꼭 문제가 생긴다. 친정엄마는 그것 먹고 어떻게 저 몸을 유지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맨날 하는 농담, 나 몰래 숨어서 혼자 맛있는 거 다 먹잖어. 그런다. 먹는 건 그렇지만 그렇다고 내가 아주 야윈 것도 아니다. 키 166에 59-60킬로그램 정도이니 그저 보통 체형이다. 겉모습만 보면 아주 건강한 편, 살이 찐 것도 아니고 마른 것도 아닌 적당한 상태, 본단식 5일째인 지금은 56킬로그램이다.) 이쯤해서 막을 내리고 다음에 또 해보라고 한다. 남편은 18일까지 단식을 해본 사람이라 이것저것 잡다한 지식이 많이 들어 있다.
식사 준비를 못하니 엄마랑 남편이 고생이다.
괜찮다고는 하지만 미안하다.
음식 냄새 풍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더 미안하다.
정말이지 난 괜찮은데,,
딱히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늦게까지 일을 했다.
힘은 없지만 몸이 한결 가볍고 두통이 없어지니 날아갈 것 같다.
이제 담배 생각도 거의 나지 않는다.
늦은 저녁시간에 다시 구토가 올라온다.
그 어느 떄보다도 심하다.
폭풍전야였던 것인가?
구충제를 먹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위가 아직 정리가 덜 된 것인지.
마그밀을 먹은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다 사라진 듯하던 고통이 다시 시작되니 견디기도 더 힘이 든다.
점점 심해지더니 이제 진짜로 뭐가 넘어온다.
쓴 물 정도를 토했는데 오늘은 영 다르다.
이게 똥물이라는 건가?
12시도 훨씬 넘은 새벽인데 노랗고 약간 검은 색을 띤 액체가 끝도 없이 그야말로 콸콸 넘어온다. 너무 쓰다.
다 넘어온 듯 이제 토할 기운도 없다 싶을 때쯤 되니 차라리 속이 가라앉으면서 좀 편안해진다. 구토가 가라앉자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자신이 가엾어서, 힘겹게 지나온 꽤 오래전 시간들이 뜬금없이 떠올라서 그렇게 한참을 자기 연민에 빠져 울고 또 울었다.
6월 30일
1차 보식 시작
잠이 더 줄었다.
원래 밤새 일하는 데 익숙한지라 많이 자는 편은 아닌데,
아니다. 원래 규칙적이지 않다.
내리 사흘 일하고 내리 사흘 잠자고, 내리 사흘 굶고, 내리 사흘 먹고, 내리 사흘 게으름피다 한꺼번에 몰아 청소하고,
이 표현이 오히려 내 생활에 더 가깝다.
일을 핑계댈 수도 있겠지만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암튼 많이 자지 않아도 피로한 줄을 모르겠다.
지난 새벽에 지나간 잔인했던 태풍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침부터 부엌에서 나는 소리가 요란하다.
남편이랑 엄마가 의논해 가면서 미음을 쑤고 있다.
원래 잡곡밥(쌀, 보리, 현미, 검은쌀, 수수, 조, 차조, 간간이 콩 종류도 넣고)을 먹는 터라 그것을 가지고 미음을 쑬 모양이다. 불려둔 잡곡을 믹서에 갈아 은근한 불에서 저어가며 미음을 끓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기 좋다.
행복한 아침이다.
마음에 결정을 내린 적도 없는데 이미 본단식은 끝이 나고 미음을 먹지 않으면 안되는 사태가 벌어진 듯하다.
그래, 이쯤해서 접고 단식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같은 것은 다 사라졌으니 다음을 기약하자.
머그잔에 1/3쯤 미음을 담아 내온 남편의 얼굴이 더 흥분되어 있다.
너무너무 맛있고 먹고 나면 힘이 날 거라면서..
막상 먹어보니 너무 맛이 없다. 실망 또 실망.
원래 먹는 거 재미없어 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정말 재미없다.
그나마 남겼다가 2시간 뒤쯤 마저 먹었다.
산책을 나갔다.
기분 같아서는 뒷산에 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동네 한바퀴 도는 데도 서너 번은 쉬어야 한다.
그래도 맑은 공기를 쐬고 바람을 맞는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다.
7월 1일
1차 보식 2일째
두부와 찐감자 생각이 났다.
언제부터 두부 먹어도 되냐고 남편한테 묻기까지 했다.
뭔가 슬슬 당기는 모양이다.
보라색이 나는 미음 반잔을 먹었다.
아직은 기분뿐 입맛은 깔깔하다.
백태가 낀 것이 없어지지 않는다.
매캐한 냄새도 마찬가지.
심하게 양치질을 해봐도 소용이 없다.
아주 간간이 구토가 올라온다.
힘이 빠지지만 구토를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인지.
몸무게는 이제 더 이상 줄지 않고 그대로다.
미음 한 잔으로 칼로리가 충당이 된다고 생각하니 보통 때 먹는 그 많은 음식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녁에도 미음 반잔을 먹었다.
어제보다는 입안이 덜 깔깔하다.
먹을 만하다.
소변 색깔이 거의 흰색에 가깝다.
근데 약간의 거품이 생긴다. 뭘까? 왜 그럴까?
몸의 조그만 변화도 눈여겨보게 된다.
7월 2일
1차 보식 3일째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내일 집으로 칮아오겠다고 하는데 손님 접대할 일이 걱정이다.
점심 식사를 같이 해야 할 것 같은데, 어찌해야 하나?
약속을 미뤄야 하나?
근데 앞으로 당분간은 제대로 식사하기가 그러니 미룬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되는 대로 해야지 뭐.
아침에 잡곡으로 만든 죽을 1/3컵 먹었다. 배추 넣은 호박된장국과 함께.
배추 이파리는 식초에 담갔다가 넣고, 된장은 지난 번에 주문해둔 호박을 숙성시켜 넣어 만든 호박된장으로 끓였다.
산책을 나갔는데 산으로 오르는 길목까지 갈 수 있었다.
쉬엄쉬엄 쉬어가며 남편의 손을 잡고 걸었다.
나무 그늘에 앉아 바람을 맞으니 살 것 같았다.
죽을 먹어서 그런지 이틀 전처럼 그렇게 다리가 풀린다거나 맥없이 주저앉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냥 좀 어지러웠다.
따끔따끔한 햇살도 기분 좋다.
어느새 진초록으로 변한 이파리들도 싱그럽다.
가뭄에 맘 조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고추도 콩도 옥수수도 물이 올라 아주 보기 좋다.
비가 더 와야 될 텐데,,
해갈은 다 된 것이지, 그러고 보니 책도 신문도 읽은 지가 아주 오래된 듯한 느낌이다.
머리맡에 있던 책들은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지 오래고, 음악을 듣는 것도 귀찮게 느껴질 정도였다.
세상 일이 궁금해지는 걸 보니,
보고 싶고 듣고 싶다는 신호인 모양이다.
살 만해졌나보다.
7월 3일
1차 보식 4일째
죽량을 조금 늘였다. 반잔 정도로.
세 끼를 다 먹자니 힘에 겹다.
된장국도 맛이 없다.
배추줄기만 씹고 있다.
다시물로 제대로 우려낸 된장국 생각만 났다.
멸치가 안된다고 하니 다시마를 넣어볼까?
그건 괜찮겠지.
점심에 손님이 왔다.
말하는 것도 힘이 들어 숨가빠했던 이삼일 전과는 많이 다르다.
한참을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긴장을 한 탓인지 그래도 별로 힘든 줄 몰랐다.
단식중이라 집에서 식사대접을 못해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집 옆에 해물탕을 잘하는 집이 있으니 미안하지만 남편과 같이 다녀오라고 했다.
근데 이야기가 자꾸 길어져서 그들만 식당으로 보낼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
함께 식당으로 갔다.
해물탕에 낙지볶음에 부침개에 냄새가 진동을 하는 식당에 앉았는 데도 다행히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다. 물만 마시고 있는 나를 보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더 미안해하고 애처롭게 쳐다봤다. 순간순간 어떤 음식 냄새는 역겹기까지 했다.
손님들이 가고 나자 남편은 내게 정말 대단하다고, 혼자 맛있게 먹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하고 고마운데 그거 아는지 몰라.
암튼 인터뷰는 잘 끝이 났다.
함께 왔던 아들도 그들과 같이 떠났는데 몹시 허전하다.
허전한 맘으로 집으로 들어가기 싫어서 남편과 산책을 했다.
동네를 크게 두어 바퀴 돌았다.
쉬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기운을 차린 모양이다.
저녁에 죽을 먹고 나서 내일 먹을 두부를 사러 농협까지 걸어서 갔다왔다.
슈퍼에서 파는 두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직접 만들어 파는 손두부를 사먹는다.
평소에도 먹던 건데 콩의 고소한 맛이 그대로 살아있고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두부라 믿음이 간다. 두부 한 모를 들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1차 보식으로 미음을 먹은 뒤로 아직 한번도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자기 전에 마그밀을 6알 먹었다.
치질은 통증이 가라앉고 크기도 아주 작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7월 4일
1차 보식 5일째
오늘은 된장국에 두부를 넣어서 먹는 날이다.
두부 맛이 어떨까?
궁금하다.
몸에 붉은 반점들이 자꾸 생긴다.
다리에도 목에도 가슴에도 툭툭 불거지는 것이 가렵다.
아무 것도 나지 않은 채 가렵기만 하던 본단식 떄와는 달리 가려움증의 정도가 심하다.
어제 마그밀을 먹었는 데도 변을 보지 못했다.
아랫배가 더부룩한 것이 기분이 영 별로다.
변의가 느껴져 화장실을 가도 앉으면 나오질 않는다.
다시 마그밀을 3알 먹었다.
뱃속이 편치 않으니 두부 맛도 그저 그렇다.
어제 두부를 사들고 올 때의 뿌듯한 마음은 다 어디로 갔는지.
왜 이리 다 시들한지.
기운이 빠진다.
7월 5일
2차 보식 시작
밥을 씹어 본다.
달다.
상추쌈이 그립다.
생된장을 찍어 먹어본다.
짜지만 입맛이 돈다.
배추김치를 씻어서 씹어보니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입안이 다 개운해지는 듯하다.
이제 좀 사람이 먹는 음식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분도 함께 좋아졌다.
그동안 쉬었던 산엘 다시 오르기로 했다.
2시간 코스 정도인데 아무래도 오늘은 끝까지 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간간이 어지럽기도 하고 숨도 차다.
자주 쉬면서 중간 정도까지만 갔다가 되돌아왔다.
그래도 기분은 아주 그만이다.
숲에 난 오솔길을 걸을 때가 젤로 행복하다.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이파리 사이로,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받으며..
아, 살 것 같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새삼 드는 것은 왜일까?
정말 새삼스럽다.
혼자 피식 웃어본다.
7월 6일
2차 보식 2일째
하루가 다르게 기운이 나는 걸 느낀다.
이 기운으로 뭘 해야 하나 싶을 정도다.
아침에 변을 보아 더 그런 것 같다.
근데 치질이 다시 커졌다.
변을 보는데 힘이 들어서 그런가?
아프기까지 하다.
그래도 아직은 참을 만하다.
산엘 갔다.
어제보다 더 먼 곳까지 갔다.
그래도 별로 힘든 줄을 모르겠다.
저녁에 또다시 변을 보았다.
한꺼번에 다 나오려고 이러나?
난감하다.
치질이 더 커지고 통증도 심해진다.
고요하던 내 둥지에 거친 비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다.
아, 싫다.
속을 비우니 허기가 진다.
단식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식욕이다.
먹고 싸고..먹고 싸고..
혐오감? 자괴감?
갑자기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먹고 싶은 맘을 누르기가 힘이 든다.
아니, 갑자기 그러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도 든다.
철없음에 놀라고,
뭐든 삼킬 듯한 식욕에 놀라고,
대책없이 맛깔스럽게 놓여진 음식들을 마구 떠올리며,
특히 생선구이와 회 생각이 간절하다.
치질의 통증에도 아랑곳없이 넘치는 기운을 느끼며
그렇게 대책 없이 하루가 갔다.
7월 7일
2차 보식 3일째
잘 지내다가 갑자기 먹는 것 떄문에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남편과 같이 가서 감자와 토마토를 사왔다.
찐감자를 올려놓고 너무 행복해 하는 나를 본다.
평소에 잘 먹지 않던 건데..
어릴 때도 마찬가지..
남편과 같이 앉아 따끈한 찐감자와 물에 씻은 김치를 함께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토마토는 갈아서 꿀을 한 숫깔 넣어 마셨다.
쥬스 또한 일품이었다.
아, 살 것 같다!
몸무게는 다시 조금 늘어서 57킬로그램 정도다.
몸에 났던 것들은 거의 사라졌다.
오늘도 산에 올랐다.
드디어 전처럼 꼭대기까지 올랐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아침에 샤워를 한 몸인데도 짠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팔각정에 누워 산바람을 맞으니 신선이 따로 없다.
6개월 뒤에 다시 시작할 단식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번보다 더 잘해낼 자신감이 생긴다.
사실 불안했다.
막연한 불안감, 생각해 보면 두렵거나 불안해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랬다.
윗몸 일으키기 20번, 허리돌리기 300번을 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약간 피곤함을 느끼며 산을 내려왔다.
오늘은 아들이 오는 날이다.
뭘 좀 해서 먹일까?
장날 시장을 봐 둔 것들로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본다.
고기는 없다.
갈치를 구웠다. 싱싱한 어린 오징어를 데치고, 야채쌈을 놓고, 감자를 으깨어서 내가 집에서 만든 싱싱한 마요네즈를 넣고 감식초와 설탕물에 절인 오이와 당근도 넣고 꿀도 한 숫깔 넣고 샐러드를 만들었다. 조개 넣은 미역국도 끓이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지만 내 반찬은 따로다.
저녁에는 상치를 식초물에 씻어서 생된장을 곁들여 쌈을 먹었다.
그릴에 구운 갈치구이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결국 먹고 말았다.
남편이 너무 참는 것도 병이야, 그러면서 한입 떼어주는데 그렇게 예쁠 수가..
늦은 저녁에 다시 감자 생각이 났다.
다시 한 개를 먹었다.
한번에 50번씩 씹으려니 그것 또한 일이다.
침이 섞여 거의 유동식이 되는데 그리 맘에 들지는 않는다.
입 안에 음식이 들어가서 그 재료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상큼할 때 삼키는 버릇이 있었나보다. 더러 습관대로 오래 씹지 않고 삼켰을 텐데 소화에는 이상이 없는 듯하다.
잊지 않고 오래 씹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할 듯하다.
갑자기 많은 종류를 먹었나?
단식 후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가지 수의 음식을 먹었다.
감자, 상추, 토마토. 꿀, 두부, 호박, 김치, 다시마,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다 먹어도 되는 거라고 했으니 잘한 거야.
너무 먹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너무 먹을 게 많아졌다.
아들 얼굴도 보고, 기분 좋을 정도로 배도 부르고, 별 아픈 데도 없고 머리도 맑고,
아! 좋다!
아들이 하는 말,
엄마 얼굴색도 맑아졌고 기도 느껴져요, 그런다.
내가 보기엔 눈빛이 진짜로 맑아진 거 같은데 왜 아무도 이야길 안 해주는 거야!
근데 담배 생각이 슬슬 나는 걸 어쩌나!
단식을 통해 담배를 끊겠다는 생각이 애초부터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담배 생각이 날 줄이야.
잊자, 잊자,
오랜만에 체 게바라 평전을 들었다.
7월 8일
2차 보식 4일째
몸무게를 달아보니 다시 1킬로그램이 늘었다.
58킬로그램.
단식 전에는 하루 두 끼를 먹었는데 한 끼에 먹는 양은 그 전보다 적지만 하루 세 끼를 꼬박 먹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빠질 때처럼 하루에 1킬로그램씩 몸무게가 늘고 있다.
화장실을 못가서 그런가?
매일 아침 화장실을 가던 습관이 돌아오질 않는다.
그제 마그밀의 힘을 빌어 화장실을 두 번 갔다오고 어제는 또 걸렀다.
어제 먹은 것도 있고 해서 오늘은 화장실을 가겠지, 했는데 소식이 없다.
다시 마그밀을 먹어야 하나, 고민된다.
그날그날 볼일을 보지 않으면 그 다음에 화장실 가는 것이 겁난다.
치질도 그렇고 더부룩한 아랫배의 느낌도 그렇고 제발 오늘은 화장실을 갔으면 좋겠다.
윗몸 일으키기를 하고 배도 만져본다.
아무래도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산에 갈 차비를 하자, 남편이 말린다.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그래도 고집대로 산에 올랐다.
오늘도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고통스런 항문을 빼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
저녁 때 아들과 남편이랑 시내쪽으로 바람을 쐬러 갔다.
쇼윈도에 걸린 옷들도 구경하며 즐겁게 걸어다녔다.
맥도날드 앞에서 우리는 잠시 고민을 했다.
먹는 것이 빠지니 아무래도 좀 허전한 듯,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기로 했다.
새로 나온 맥플러리가 아주 달콤했다.
유제품은 안좋다고 했는데, 알면서도 선을 넘었다.
내일 떠나는 아들이 아쉽다.
함께 좀더 걷고 싶었지만 다리가 붓는 것 같아서 그만 발길을 돌렸다.
집에 들어와서 보니 다리가 많이 부었다.
남편은 무리하게 산에 오른 탓이라며, 제발 좀 적당히 하란다.
정말 그런가?
아니면 짜게 먹어서 그런가?
쌈을 먹을 때 생된장을 너무 많이 얹었나?
밥은 조금인데 반찬은 많이? 평소에도 식습관이 좀 그런 편이다.
반찬 하나하나를 보면 싱거운 편인데 밥은 조금, 반찬은 많이 먹는 편이다.
이것도 고쳐야 하는 습관인지?
마그밀을 4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 그리고 단식 이후 처음으로 담배를 들었다.
종이 타는 냄새가 역겹다.
담배잎이 타는 그윽한 향은 어디로 다 가고..
이대로 담배맛을 잊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
7월 9일
2차 보식 5일째(마지막 날)
아침 일찍 아들이 떠났다.
집안이 썰렁하다.
이제 엄마보고 쉬라고 말씀드렸다.
그동안 고생하셨다고, 이제 나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그래도 엄마는 부엌에서 떠나질 않는다.
간간이 설거지도 하시고 그런다.
그래도 대부분의 집안일은 이제 내가 한다.
매운 맛이 그립다. 칼칼하고 알싸한 생김치에 매운탕에 초간장.
하지만 상상으로 그치고 나박김치로 대신해야겠다.
입이 심심해서 꿀차를 타서 마셨다.
오히려 배가 고파지면서 식욕이 생긴다.
조기 한 마리를 구워 채소반찬과 함께 밥을 먹었다.
단식 전에는 아침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요즘은 매일 아침을 먹게 된다.
새벽 같이 일어나서 조금 움직이면 밥 생각이 절로 난다.
맨날 늦잠을 잤는데 늦게 잠이 든 날도 일찍 깬다.
아침을 먹고 나서 좀 움직이다. 다시 잠을 자고, 이런 식이다.
뭔가 달라지고 있는데 강제로 습관을 바꿔야 하는지 어쨰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몸이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놔둔다.
다리가 아직도 많이 부었다.
복숭아뼈가 파묻혀 보이지 않을 정도다.
무거운 다리로 집안을 어술렁거려 본다.
산에 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힘들다.
오전 내내 컴퓨터 앞에서 일을 했더니 더 부은 거 같다.
오후에는 내내 누워서 책도 보고, 텔레비전도 보고, 음악도 듣고 그랬다.
팔자가 늘어졌다.
마그밀을 먹었는 데도 소식이 없다.
배가 부글부글 끓기만 하고, 변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화장실을 가야할 것 같은 분위긴데,
담배가 너무 그립다.
결국은 한 대 물고 화장실에 앉았다.
거의 다 타들어갈 무렵, 이것도 실패로구나, 하는데
순간 쏟아진다.
치질의 통증에도 아랑곳없이 속이 시원하다.
담배 없이 화장실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올까? 그런 날이..
7월 10일
이제 보식도 끝이 나고 자연식 위주로 식사를 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치질 떄문에 해피 님이 권하신 대로 다시 효소단식을 해볼까 생각 중이다.
효소가 올 때가 됐는데..
15일부터 시작하면 될 거 같다.
내일은 회의가 있어 서울 나갔다 와야 하고,
15일 전까지 일 좀 마무리 해놓고,
이 달 말까지 다시 15일 효소단식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
이 기회에 치질이 나을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커피는 끊었는데(예전에는 거의 하루에 10잔 넘게 마셨음) 담배는 끊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지만 정말이지 끊기도 힘들다.
잠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든가, 콱 막힌 생각들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든가, 복잡한 머리를 잠시 식힐 수 있다든가, 아,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해결이 날나는지..
일은 핑계다. 그런 생각을 안해보는 것은 아니지만,
자책하지 말자.
지금은 하루 한두 개피, 서너 개피, 그 정도다.
엄청나게 많이 줄였으니 최대라고 해도 반갑 이상은 피지 않도록 하자.
이쯤해서 타협을 하자.
다음 다음 다음 단식도 있으니까..
몸무게는 58-59에서 거의 멈췄다.
그런데도 몸의 모양은, 이를테면 허리선이라든지, 허벅지 둘레라든지, 하는 곳은 빠진 것 같다. 바지를 입어보면 알 수 있다.
거의 예전의 몸무게를 되찾았는 데도 빠진 것이 분명하다.
기계가 잘못됐나?
오늘은 장날이다.
남편과 함께 장구경을 나섰다.
인절미도 사먹고 찐옥수수도 먹었다.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었다.
비름이며, 아욱이며, 호박잎, 싱싱한 상치, 오이 당근, 감자...
장바구니에 예전보다 훨씬 많은 채소류가 담겼다.
그동안 고생한 남편을 위해 우럭도 샀다.
매운탕의 유혹에 넘어 가지 않을 자신이 있다며, 큰소리 쳤지만 막상 끓이면 어떨지,,
그래도 입안이 따가워서 많이 먹지는 못할 것이다.
후두둑 비가 쏟아진다.
장꾼들의 얼굴이 엉망이다.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니 부침개가 생각난다.
남편이 이제 부침개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한다.
식용유 때문에 안된다고, 앞으로 우리집에 식용유 넣은 음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거라고 했더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
해피 님께서 올려놓은 글을 읽어 본 터라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더니, 역시 정보는 계속 업데이트 돼야 한단다. 자기가 단식할 때는 책에 그런 말이 없었단다.
부침개 대신 사온 감자를 쪄서 먹었다.
따끈한 꿀차도 마시고..
그래도 입이 심심하다.
원래 군것질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인데, 이상하다.
아침을 꼬박꼬박 먹는 것도 그렇고,
어째야 하나? 세 끼 식사를 계속 해야 하나?
몸이 원하는 대로 따르자, 생각은 하고 있지만 위가 약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생각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내 몸이 원하는 코드를 정확히 읽어내지 못함이 속상하다.
하지만 한 번의 단식으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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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간간이 위통이 온다, 며칠째 잠도 모자랐고, 머리 속이 복잡해진 탓이다. 두렵다.
가끔 지지난 해 겪었던 위경련의 고통이 악몽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멋모르고 놓는 첫째보다 둘째 놓을 때가 더 떨린다고 하더니, 그 짝이다.
저녁이 되자 더 심해졌다.
단식을 생각해 본다.
6월 24일
단식 이야기를 꺼내자 남편이 더 좋아한다.
아마도 담배까지 끊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 듯.
엄마는 걱정부터 하신다.
굶는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려고 하질 않으신다.
식사 걱정을 했더니 알아서 챙겨 먹을 터이니 그건 걱정 말란다.
단식 하는 사람이 문제지 우리가 뭔 문제냐고..
잠깐 집에 들른 아들은 많이 아프냐고, 그러면 하는 게 좋지 뭐, 그런다.
배가 아파 제대로 먹지 못하는 지금이나 단식이나 별 차이도 없겠건만 그래도 아직은 그래 하자!,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덜 아프다는 이야기겠지.
6월 25일
본단식 시작
어제 밤에는 힘도 없고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픈데, 비는 또 왜 그렇게 쏟아지는지..
이래저래 잠을 설쳤다.
밤을 샌 남편의 이른 아침식탁에서 김치 한 조각을 씹어본다.
정말 맛이 없다.
평소에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무렴, 이렇게 맛이 없을 수가, 자연스럽게 말이 튀어나왔다.
'나, 시작해야겠어.'
예비단식도 없이 바로 본단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하자고 할 때 해야지.
6월 26일
본단식 이틀째.
굶었다 먹었다, 워낙 규칙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먹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고통은 별로 없다.
문제는 담배다.
두통이 참아내기 힘들 정도다.
그야말로 쥐어뜯고 있다.
담배 때문일까?
음식물이 들어가지 않으니 오히려 배는 아프지 않다.
몸이 무겁고 이가 아프다.
이와 이 사이에서 니코틴이 줄줄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야말로 느낌이겠지.
뭔가 좋지 않은 게 녹아내리고 있는 건 확실하다.
치주염 초기단계라고 했으니 잇몸에서 좋지 않은 것들이 빠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잇몸이 부어 더 아프다.
간간이 위통도 있다.
날씨 탓인지 여러해 전에 교통사고로 다친 다리도 아프다.
날씨가 흐리면 간혹 있는 일이긴 하지만.
평소에 물을 많이 마시는 습관이 있는데도 물을 마시는 것이 힘이 든다.
물도 꼭꼭 씹어먹듯이 마시라고 했는데 잘 되지 않고 있다.
그저 한 입씩 삼키고 있다.
속이 메스껍고 헛구역질을 하는 것이 꼭 애가 들어선 느낌이다.
속이 한번 뒤집어지면 한동안 힘이 쫙 빠지는 것이 기운이 하나도 없다.
노숙자 소식지 만드는 일을 급하게 해달란다.
망설이다가 그냥 해주기로 했다.
차라리 일을 하면 잊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에
다른 것도 아니고 이 사회에서 소외된 노숙자들의 소식지를 만든다는데,
해주기로 했다.
문제는 시간인데 이틀은 족히 걸리겠다.
마음을 다잡고 원고들을 훑어본다.
늦도록 일을 했다.
언제나처럼 일이 시작되면 아픈 것도 모르고 한다.
일 끝나면 뻗겠지만 그래도 앉아 있을 만하다.
6월 27일
본단식 3일째
새벽까지 일을 했다.
아무래도 무리다.
으슬으슬 춥다. 옥매트에 불을 올리고 두꺼운 이불을 덮었다.
침대에 누웠는데 금새 잠이 들었다.
12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멍한 것이 여기가 어딘지 잠시 생각해 본다.
그래, 우리집, 침대 위잖아.
이렇게 황당할 때가 가끔씩 있다.
우리집 전화번호나 핸드폰 번호가 생각나지 않을 때처럼.
입이 마르다.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이게 아닌데, 다시 속도를 늦춘다.
천천히, 천천히, 한모금씩, 한모금씩.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 보내오기로 한 원고가 다 와야 마무리를 할 텐데, 아직 연락이 없다.
앉아 있기가 힘들어서 원고가 마저 오면 일을 시작하기로 한다.
다시 누웠다.
이때쯤이면 배고픈 것이 힘들어 통닭이 오락가락한다는데 나는 전혀 식욕을 느낄 수가 없다. 잘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암튼 배고픔으로 고통스럽지 않은 건 다행이다.
정말 힘이 없다.
앉아 있기도 힘이 드는데 왜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일까?
답답한 느낌 떄문인 것 같다.
주방 옆에만 가도 나는 이상한 냄새들 때문에 괴롭다.
목욕탕도 마찬가지.
사람 냄새도 마찬가지.
토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게 만든다.
워낙에 비위가 약해 평소에도 종종 왝왝거리고 다니지만. 더 심하다.
목에 뭐가 걸린 듯한 느낌이 들면서 간간이 기침이 난다.
가래다.
검고 누렇고 끈적끈적한 것이 뭉글뭉글 뭉쳐서 나온다.
남편과 함꼐 산책을 가기로 했다.
마음뿐이지 다리가 떨리고 무릎이 탁탁 접히는 것이 50미터를 못가서 주저앉는다.
구역질이 나면서 속이 다 뒤집히고 쓴물 같은 것이 올라온다.
가슴에도 통증이 온다. 숨이 가쁘고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상처가 없었는 데도 치질이 다시 말썽이다. 우리하게 아픈 것이 안에서 탈이 난 모양이다.
지난 봄에 치질 수술을 하겠다고 큰맘 먹고 병원을 찾았었다.
아이 낳고 생긴 것이니 벌써 18년째 달고 산다.
종일 앉아서 원고와 컴퓨터와 씨름을 해대니, 거기다가 변비까지 있었다.
삼년 전부터 소식하고, 커피를 줄인 뒤로 없어졌지만.
(변비와 커피가 관계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그 당시 내가 그랬었다는 이야기)
몇번이고 치질 수술을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병원 가서 질찰도 받아보았지만 그때마다 내키지 않아 관뒀다.
칼을 댄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기필코 수술을 해서라도 이 고통에서 벗어나리, 마음먹었는데 진료 후에 의사 말이 기가 찼다. 상태가 심각해서 레이저로는 도저히 안되고 근치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도 열흘 정도는 입원해야 하며, 통증이 매우 심해서 몰핀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열흘씩 되는 기간도 문제지만 몰핀이라니, 또 포기했다. 시간이 되면 언제 단식을 해서 완치시켜보자, 했다. 이번 단식의 목표는 그게 아니지만..
무리하면 안된다고 말리는 남편을 무시하고 잠시 쉬었다가 놀이터까지 갔다.
햇살도 바람도 좋다.
힘은 없지만 기분은 좋다.
속도 점점 가라앉았다.
구충제도 마그밀도 먹지 않고 시작한 터라 아직 변을 보지 못했다.
자기 전에 마그밀 6알을 먹었다.
속이 메스껍고 이상한 느낌의 복통이 살살 온다.
마그밀 때문인지 변을 보려고 그러는 것인지. 시원하게 볼일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몸무게는 하루 1킬로그램 정도씩 빠지고 있다.
살을 빼려고 한 단식은 아니지만 아랫배가 점점 작아지는 것이 몸매도 볼 만해지고 있다.
얼굴색도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누렇던 것이 내가 봐도 약간 뽀얀 듯하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잔잔한 것이 잘 나는 편인데 손으로 만져보니 얼굴 피부도 매끄럽다. 눈이 움푹 꺼진 것이 쌍거풀이 또렷해졌다. 속쌍거풀이라 평소엔 잘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그동안 부었거나 얼굴에 나이살이 붙은 탓이었을까?
아, 한 20년 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
깨끗한 피부에 늘씬한 몸매.
한때 그러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만은, 온통 찌들은 내 몸을 보면서 새삼 나이를 느끼고 세월을 느낀다. 혹사당하고 때로는 학대당한 몸을 생각하니 그 세월 속에 침전되어 있는 참으로 많은 원망들이 들려온다.
워낙 타고나길 건강하게 타고났는 데도, 큰병이 없는 데도, 자잘하게 아픈 것(위통, 편두통, 관절, 기관지, 치질, 치주염, 견비통), 들로 종종 힘들어하고, 무리하게 움직이고 나서 뻗어버리고, 술과 담배 가까이에 살고, 운동이라고는 근처에도 가지 않고(산에 다닌 지 이제 6개월째), 뭘 믿고 그랬는지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앞으로 잘할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독소들이 빠져나가는 기운을 느끼며 앞날을 생각해 본다.
6월 28일
본단식 4일째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도 온몸이 가렵다.
특별히 뭐가 난 것도 아닌데 매끈한 살이 그냥 가렵다.
샤워를 하고 나니 좀 낫다.
마그밀을 먹은 덕분에 화장실도 다녀왔다.
마지막엔 코울타르 같이 검고 끈적끈적할 것 같은 묽은 변도 보았다.
남들이 말하는 숙변이라는 것인지..
소변 색깔도 많이 맑아졌다.
뱃속이 편안하다.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 탓인가?
큰소리도 싫다.
냄새도 싫다.
특히 사람 냄새가 싫다.
남편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속상해 하는 남편을 보면서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마늘 냄새가 심하게 나는 걸, 입냄새도 마찬가지.
남편이랑 엄마는 나 떄문에 양치질도 여러 번 하고 매일 목욕하고 난리다.
느긋하게 너그럽게 마음가짐을 가져보려 하는데 뜻대로 잘 안된다.
이런 단순한 냄새들이 나를 자극하면 토할 듯 치밀어 오르는 것이 기분까지 엉망이 된다.
어떤 힘에 지배당한 느낌이다.
통제가 안되고 불쑥불쑥 오라오는 신경질.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면 정말 우울해진다.
몸을 함부로 대한 대가라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자신을 타일러본다.
근데 음식물을 먹지 않은 지 나흘짼데 이에 뭐가 이렇게 달라붙은 느낌이 드는지, 불쾌하다.
혀로 이의 표면의 감촉을 느껴보니 줄이 간 듯 우둘두둘하다.
다시 양치질을 해도, 박박 솔로 문질러도 소용이 없다.
혀에는 온통 백태가 하얗게 끼어 돌기 하나하나가 곤두선 느낌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실제로 돌기 하나하나가 커져서 끝이 하얗게 변한 것이 보인다
입속이니 크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근 20년을 피워 온 담배 탓이라고 생각한다.
오후에는 왼쪽 귀 아래, 목 주위에 이제까지 보지 못한 붉은 반점이 툭툭 불거지면서 가렵다. 기관지염을 앓은 적이 있고 겨울만 되면 목감기로 시달렸는데 그래서 그런가?
3년 전 위통 때문에 절로 소식을 하게 된 뒤로 건강도 좋아져서 기관지염도 덜 앓았는데, 올해는 다시 몸이 좋질 않다.
담배가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끊질 못하고 있다.
책상에만 앉으면 습관적으로 담배를 들게 된다.
안 그러면 집중이 잘 안되니깐.
제몸 하나 보살피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긴 하나 늘 그 경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6월 29일
본단식 5일째
위통도 두통도 온몸의 욱신거림도 미열도 치질의 통증도 사라지고,
남편 말처럼 하나씩 하나씩 지우개로 지워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이대로 계속 먹고 싶지 않은데, 단식을 연장할까 생각해 본다.
먹는데 대한 유혹이 전혀 느껴지질 않으니 더 한다고 해도 힘들 것 같지는 않다. 몸의 통증들도 서서히 사라져 가고 다른 이들이 말한 고요한 상태를 나도 느껴보고 싶다.
남편은 말린다. 제대로 한 단식은 처음이니(준비없이 사흘을 굶기도 하고 때론 먹는 것을 잊어버려 이틀을 굶기도 한다. 왜 이렇게 힘이 없지, 그러면 남편이 뭐 먹었냐고 물어본다. 그리고는 과식을 하고,, 그래봤자 하루 두 끼지만 소식(반 공기 정도)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조금만 많이 먹어도 위에 부담이 가서 소화가 안 되거나 설사를 하거나 그런다. 특히 신경이 예민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기면 꼭 문제가 생긴다. 친정엄마는 그것 먹고 어떻게 저 몸을 유지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맨날 하는 농담, 나 몰래 숨어서 혼자 맛있는 거 다 먹잖어. 그런다. 먹는 건 그렇지만 그렇다고 내가 아주 야윈 것도 아니다. 키 166에 59-60킬로그램 정도이니 그저 보통 체형이다. 겉모습만 보면 아주 건강한 편, 살이 찐 것도 아니고 마른 것도 아닌 적당한 상태, 본단식 5일째인 지금은 56킬로그램이다.) 이쯤해서 막을 내리고 다음에 또 해보라고 한다. 남편은 18일까지 단식을 해본 사람이라 이것저것 잡다한 지식이 많이 들어 있다.
식사 준비를 못하니 엄마랑 남편이 고생이다.
괜찮다고는 하지만 미안하다.
음식 냄새 풍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더 미안하다.
정말이지 난 괜찮은데,,
딱히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늦게까지 일을 했다.
힘은 없지만 몸이 한결 가볍고 두통이 없어지니 날아갈 것 같다.
이제 담배 생각도 거의 나지 않는다.
늦은 저녁시간에 다시 구토가 올라온다.
그 어느 떄보다도 심하다.
폭풍전야였던 것인가?
구충제를 먹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위가 아직 정리가 덜 된 것인지.
마그밀을 먹은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다 사라진 듯하던 고통이 다시 시작되니 견디기도 더 힘이 든다.
점점 심해지더니 이제 진짜로 뭐가 넘어온다.
쓴 물 정도를 토했는데 오늘은 영 다르다.
이게 똥물이라는 건가?
12시도 훨씬 넘은 새벽인데 노랗고 약간 검은 색을 띤 액체가 끝도 없이 그야말로 콸콸 넘어온다. 너무 쓰다.
다 넘어온 듯 이제 토할 기운도 없다 싶을 때쯤 되니 차라리 속이 가라앉으면서 좀 편안해진다. 구토가 가라앉자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자신이 가엾어서, 힘겹게 지나온 꽤 오래전 시간들이 뜬금없이 떠올라서 그렇게 한참을 자기 연민에 빠져 울고 또 울었다.
6월 30일
1차 보식 시작
잠이 더 줄었다.
원래 밤새 일하는 데 익숙한지라 많이 자는 편은 아닌데,
아니다. 원래 규칙적이지 않다.
내리 사흘 일하고 내리 사흘 잠자고, 내리 사흘 굶고, 내리 사흘 먹고, 내리 사흘 게으름피다 한꺼번에 몰아 청소하고,
이 표현이 오히려 내 생활에 더 가깝다.
일을 핑계댈 수도 있겠지만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암튼 많이 자지 않아도 피로한 줄을 모르겠다.
지난 새벽에 지나간 잔인했던 태풍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침부터 부엌에서 나는 소리가 요란하다.
남편이랑 엄마가 의논해 가면서 미음을 쑤고 있다.
원래 잡곡밥(쌀, 보리, 현미, 검은쌀, 수수, 조, 차조, 간간이 콩 종류도 넣고)을 먹는 터라 그것을 가지고 미음을 쑬 모양이다. 불려둔 잡곡을 믹서에 갈아 은근한 불에서 저어가며 미음을 끓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기 좋다.
행복한 아침이다.
마음에 결정을 내린 적도 없는데 이미 본단식은 끝이 나고 미음을 먹지 않으면 안되는 사태가 벌어진 듯하다.
그래, 이쯤해서 접고 단식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같은 것은 다 사라졌으니 다음을 기약하자.
머그잔에 1/3쯤 미음을 담아 내온 남편의 얼굴이 더 흥분되어 있다.
너무너무 맛있고 먹고 나면 힘이 날 거라면서..
막상 먹어보니 너무 맛이 없다. 실망 또 실망.
원래 먹는 거 재미없어 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정말 재미없다.
그나마 남겼다가 2시간 뒤쯤 마저 먹었다.
산책을 나갔다.
기분 같아서는 뒷산에 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동네 한바퀴 도는 데도 서너 번은 쉬어야 한다.
그래도 맑은 공기를 쐬고 바람을 맞는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다.
7월 1일
1차 보식 2일째
두부와 찐감자 생각이 났다.
언제부터 두부 먹어도 되냐고 남편한테 묻기까지 했다.
뭔가 슬슬 당기는 모양이다.
보라색이 나는 미음 반잔을 먹었다.
아직은 기분뿐 입맛은 깔깔하다.
백태가 낀 것이 없어지지 않는다.
매캐한 냄새도 마찬가지.
심하게 양치질을 해봐도 소용이 없다.
아주 간간이 구토가 올라온다.
힘이 빠지지만 구토를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인지.
몸무게는 이제 더 이상 줄지 않고 그대로다.
미음 한 잔으로 칼로리가 충당이 된다고 생각하니 보통 때 먹는 그 많은 음식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녁에도 미음 반잔을 먹었다.
어제보다는 입안이 덜 깔깔하다.
먹을 만하다.
소변 색깔이 거의 흰색에 가깝다.
근데 약간의 거품이 생긴다. 뭘까? 왜 그럴까?
몸의 조그만 변화도 눈여겨보게 된다.
7월 2일
1차 보식 3일째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내일 집으로 칮아오겠다고 하는데 손님 접대할 일이 걱정이다.
점심 식사를 같이 해야 할 것 같은데, 어찌해야 하나?
약속을 미뤄야 하나?
근데 앞으로 당분간은 제대로 식사하기가 그러니 미룬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되는 대로 해야지 뭐.
아침에 잡곡으로 만든 죽을 1/3컵 먹었다. 배추 넣은 호박된장국과 함께.
배추 이파리는 식초에 담갔다가 넣고, 된장은 지난 번에 주문해둔 호박을 숙성시켜 넣어 만든 호박된장으로 끓였다.
산책을 나갔는데 산으로 오르는 길목까지 갈 수 있었다.
쉬엄쉬엄 쉬어가며 남편의 손을 잡고 걸었다.
나무 그늘에 앉아 바람을 맞으니 살 것 같았다.
죽을 먹어서 그런지 이틀 전처럼 그렇게 다리가 풀린다거나 맥없이 주저앉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냥 좀 어지러웠다.
따끔따끔한 햇살도 기분 좋다.
어느새 진초록으로 변한 이파리들도 싱그럽다.
가뭄에 맘 조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고추도 콩도 옥수수도 물이 올라 아주 보기 좋다.
비가 더 와야 될 텐데,,
해갈은 다 된 것이지, 그러고 보니 책도 신문도 읽은 지가 아주 오래된 듯한 느낌이다.
머리맡에 있던 책들은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지 오래고, 음악을 듣는 것도 귀찮게 느껴질 정도였다.
세상 일이 궁금해지는 걸 보니,
보고 싶고 듣고 싶다는 신호인 모양이다.
살 만해졌나보다.
7월 3일
1차 보식 4일째
죽량을 조금 늘였다. 반잔 정도로.
세 끼를 다 먹자니 힘에 겹다.
된장국도 맛이 없다.
배추줄기만 씹고 있다.
다시물로 제대로 우려낸 된장국 생각만 났다.
멸치가 안된다고 하니 다시마를 넣어볼까?
그건 괜찮겠지.
점심에 손님이 왔다.
말하는 것도 힘이 들어 숨가빠했던 이삼일 전과는 많이 다르다.
한참을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긴장을 한 탓인지 그래도 별로 힘든 줄 몰랐다.
단식중이라 집에서 식사대접을 못해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집 옆에 해물탕을 잘하는 집이 있으니 미안하지만 남편과 같이 다녀오라고 했다.
근데 이야기가 자꾸 길어져서 그들만 식당으로 보낼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
함께 식당으로 갔다.
해물탕에 낙지볶음에 부침개에 냄새가 진동을 하는 식당에 앉았는 데도 다행히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다. 물만 마시고 있는 나를 보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더 미안해하고 애처롭게 쳐다봤다. 순간순간 어떤 음식 냄새는 역겹기까지 했다.
손님들이 가고 나자 남편은 내게 정말 대단하다고, 혼자 맛있게 먹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하고 고마운데 그거 아는지 몰라.
암튼 인터뷰는 잘 끝이 났다.
함께 왔던 아들도 그들과 같이 떠났는데 몹시 허전하다.
허전한 맘으로 집으로 들어가기 싫어서 남편과 산책을 했다.
동네를 크게 두어 바퀴 돌았다.
쉬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기운을 차린 모양이다.
저녁에 죽을 먹고 나서 내일 먹을 두부를 사러 농협까지 걸어서 갔다왔다.
슈퍼에서 파는 두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직접 만들어 파는 손두부를 사먹는다.
평소에도 먹던 건데 콩의 고소한 맛이 그대로 살아있고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두부라 믿음이 간다. 두부 한 모를 들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1차 보식으로 미음을 먹은 뒤로 아직 한번도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자기 전에 마그밀을 6알 먹었다.
치질은 통증이 가라앉고 크기도 아주 작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7월 4일
1차 보식 5일째
오늘은 된장국에 두부를 넣어서 먹는 날이다.
두부 맛이 어떨까?
궁금하다.
몸에 붉은 반점들이 자꾸 생긴다.
다리에도 목에도 가슴에도 툭툭 불거지는 것이 가렵다.
아무 것도 나지 않은 채 가렵기만 하던 본단식 떄와는 달리 가려움증의 정도가 심하다.
어제 마그밀을 먹었는 데도 변을 보지 못했다.
아랫배가 더부룩한 것이 기분이 영 별로다.
변의가 느껴져 화장실을 가도 앉으면 나오질 않는다.
다시 마그밀을 3알 먹었다.
뱃속이 편치 않으니 두부 맛도 그저 그렇다.
어제 두부를 사들고 올 때의 뿌듯한 마음은 다 어디로 갔는지.
왜 이리 다 시들한지.
기운이 빠진다.
7월 5일
2차 보식 시작
밥을 씹어 본다.
달다.
상추쌈이 그립다.
생된장을 찍어 먹어본다.
짜지만 입맛이 돈다.
배추김치를 씻어서 씹어보니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입안이 다 개운해지는 듯하다.
이제 좀 사람이 먹는 음식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분도 함께 좋아졌다.
그동안 쉬었던 산엘 다시 오르기로 했다.
2시간 코스 정도인데 아무래도 오늘은 끝까지 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간간이 어지럽기도 하고 숨도 차다.
자주 쉬면서 중간 정도까지만 갔다가 되돌아왔다.
그래도 기분은 아주 그만이다.
숲에 난 오솔길을 걸을 때가 젤로 행복하다.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이파리 사이로,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받으며..
아, 살 것 같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새삼 드는 것은 왜일까?
정말 새삼스럽다.
혼자 피식 웃어본다.
7월 6일
2차 보식 2일째
하루가 다르게 기운이 나는 걸 느낀다.
이 기운으로 뭘 해야 하나 싶을 정도다.
아침에 변을 보아 더 그런 것 같다.
근데 치질이 다시 커졌다.
변을 보는데 힘이 들어서 그런가?
아프기까지 하다.
그래도 아직은 참을 만하다.
산엘 갔다.
어제보다 더 먼 곳까지 갔다.
그래도 별로 힘든 줄을 모르겠다.
저녁에 또다시 변을 보았다.
한꺼번에 다 나오려고 이러나?
난감하다.
치질이 더 커지고 통증도 심해진다.
고요하던 내 둥지에 거친 비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다.
아, 싫다.
속을 비우니 허기가 진다.
단식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식욕이다.
먹고 싸고..먹고 싸고..
혐오감? 자괴감?
갑자기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먹고 싶은 맘을 누르기가 힘이 든다.
아니, 갑자기 그러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도 든다.
철없음에 놀라고,
뭐든 삼킬 듯한 식욕에 놀라고,
대책없이 맛깔스럽게 놓여진 음식들을 마구 떠올리며,
특히 생선구이와 회 생각이 간절하다.
치질의 통증에도 아랑곳없이 넘치는 기운을 느끼며
그렇게 대책 없이 하루가 갔다.
7월 7일
2차 보식 3일째
잘 지내다가 갑자기 먹는 것 떄문에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남편과 같이 가서 감자와 토마토를 사왔다.
찐감자를 올려놓고 너무 행복해 하는 나를 본다.
평소에 잘 먹지 않던 건데..
어릴 때도 마찬가지..
남편과 같이 앉아 따끈한 찐감자와 물에 씻은 김치를 함께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토마토는 갈아서 꿀을 한 숫깔 넣어 마셨다.
쥬스 또한 일품이었다.
아, 살 것 같다!
몸무게는 다시 조금 늘어서 57킬로그램 정도다.
몸에 났던 것들은 거의 사라졌다.
오늘도 산에 올랐다.
드디어 전처럼 꼭대기까지 올랐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아침에 샤워를 한 몸인데도 짠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팔각정에 누워 산바람을 맞으니 신선이 따로 없다.
6개월 뒤에 다시 시작할 단식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번보다 더 잘해낼 자신감이 생긴다.
사실 불안했다.
막연한 불안감, 생각해 보면 두렵거나 불안해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랬다.
윗몸 일으키기 20번, 허리돌리기 300번을 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약간 피곤함을 느끼며 산을 내려왔다.
오늘은 아들이 오는 날이다.
뭘 좀 해서 먹일까?
장날 시장을 봐 둔 것들로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본다.
고기는 없다.
갈치를 구웠다. 싱싱한 어린 오징어를 데치고, 야채쌈을 놓고, 감자를 으깨어서 내가 집에서 만든 싱싱한 마요네즈를 넣고 감식초와 설탕물에 절인 오이와 당근도 넣고 꿀도 한 숫깔 넣고 샐러드를 만들었다. 조개 넣은 미역국도 끓이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지만 내 반찬은 따로다.
저녁에는 상치를 식초물에 씻어서 생된장을 곁들여 쌈을 먹었다.
그릴에 구운 갈치구이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결국 먹고 말았다.
남편이 너무 참는 것도 병이야, 그러면서 한입 떼어주는데 그렇게 예쁠 수가..
늦은 저녁에 다시 감자 생각이 났다.
다시 한 개를 먹었다.
한번에 50번씩 씹으려니 그것 또한 일이다.
침이 섞여 거의 유동식이 되는데 그리 맘에 들지는 않는다.
입 안에 음식이 들어가서 그 재료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상큼할 때 삼키는 버릇이 있었나보다. 더러 습관대로 오래 씹지 않고 삼켰을 텐데 소화에는 이상이 없는 듯하다.
잊지 않고 오래 씹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할 듯하다.
갑자기 많은 종류를 먹었나?
단식 후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가지 수의 음식을 먹었다.
감자, 상추, 토마토. 꿀, 두부, 호박, 김치, 다시마,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다 먹어도 되는 거라고 했으니 잘한 거야.
너무 먹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너무 먹을 게 많아졌다.
아들 얼굴도 보고, 기분 좋을 정도로 배도 부르고, 별 아픈 데도 없고 머리도 맑고,
아! 좋다!
아들이 하는 말,
엄마 얼굴색도 맑아졌고 기도 느껴져요, 그런다.
내가 보기엔 눈빛이 진짜로 맑아진 거 같은데 왜 아무도 이야길 안 해주는 거야!
근데 담배 생각이 슬슬 나는 걸 어쩌나!
단식을 통해 담배를 끊겠다는 생각이 애초부터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담배 생각이 날 줄이야.
잊자, 잊자,
오랜만에 체 게바라 평전을 들었다.
7월 8일
2차 보식 4일째
몸무게를 달아보니 다시 1킬로그램이 늘었다.
58킬로그램.
단식 전에는 하루 두 끼를 먹었는데 한 끼에 먹는 양은 그 전보다 적지만 하루 세 끼를 꼬박 먹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빠질 때처럼 하루에 1킬로그램씩 몸무게가 늘고 있다.
화장실을 못가서 그런가?
매일 아침 화장실을 가던 습관이 돌아오질 않는다.
그제 마그밀의 힘을 빌어 화장실을 두 번 갔다오고 어제는 또 걸렀다.
어제 먹은 것도 있고 해서 오늘은 화장실을 가겠지, 했는데 소식이 없다.
다시 마그밀을 먹어야 하나, 고민된다.
그날그날 볼일을 보지 않으면 그 다음에 화장실 가는 것이 겁난다.
치질도 그렇고 더부룩한 아랫배의 느낌도 그렇고 제발 오늘은 화장실을 갔으면 좋겠다.
윗몸 일으키기를 하고 배도 만져본다.
아무래도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산에 갈 차비를 하자, 남편이 말린다.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그래도 고집대로 산에 올랐다.
오늘도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고통스런 항문을 빼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
저녁 때 아들과 남편이랑 시내쪽으로 바람을 쐬러 갔다.
쇼윈도에 걸린 옷들도 구경하며 즐겁게 걸어다녔다.
맥도날드 앞에서 우리는 잠시 고민을 했다.
먹는 것이 빠지니 아무래도 좀 허전한 듯,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기로 했다.
새로 나온 맥플러리가 아주 달콤했다.
유제품은 안좋다고 했는데, 알면서도 선을 넘었다.
내일 떠나는 아들이 아쉽다.
함께 좀더 걷고 싶었지만 다리가 붓는 것 같아서 그만 발길을 돌렸다.
집에 들어와서 보니 다리가 많이 부었다.
남편은 무리하게 산에 오른 탓이라며, 제발 좀 적당히 하란다.
정말 그런가?
아니면 짜게 먹어서 그런가?
쌈을 먹을 때 생된장을 너무 많이 얹었나?
밥은 조금인데 반찬은 많이? 평소에도 식습관이 좀 그런 편이다.
반찬 하나하나를 보면 싱거운 편인데 밥은 조금, 반찬은 많이 먹는 편이다.
이것도 고쳐야 하는 습관인지?
마그밀을 4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 그리고 단식 이후 처음으로 담배를 들었다.
종이 타는 냄새가 역겹다.
담배잎이 타는 그윽한 향은 어디로 다 가고..
이대로 담배맛을 잊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
7월 9일
2차 보식 5일째(마지막 날)
아침 일찍 아들이 떠났다.
집안이 썰렁하다.
이제 엄마보고 쉬라고 말씀드렸다.
그동안 고생하셨다고, 이제 나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그래도 엄마는 부엌에서 떠나질 않는다.
간간이 설거지도 하시고 그런다.
그래도 대부분의 집안일은 이제 내가 한다.
매운 맛이 그립다. 칼칼하고 알싸한 생김치에 매운탕에 초간장.
하지만 상상으로 그치고 나박김치로 대신해야겠다.
입이 심심해서 꿀차를 타서 마셨다.
오히려 배가 고파지면서 식욕이 생긴다.
조기 한 마리를 구워 채소반찬과 함께 밥을 먹었다.
단식 전에는 아침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요즘은 매일 아침을 먹게 된다.
새벽 같이 일어나서 조금 움직이면 밥 생각이 절로 난다.
맨날 늦잠을 잤는데 늦게 잠이 든 날도 일찍 깬다.
아침을 먹고 나서 좀 움직이다. 다시 잠을 자고, 이런 식이다.
뭔가 달라지고 있는데 강제로 습관을 바꿔야 하는지 어쨰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몸이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놔둔다.
다리가 아직도 많이 부었다.
복숭아뼈가 파묻혀 보이지 않을 정도다.
무거운 다리로 집안을 어술렁거려 본다.
산에 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힘들다.
오전 내내 컴퓨터 앞에서 일을 했더니 더 부은 거 같다.
오후에는 내내 누워서 책도 보고, 텔레비전도 보고, 음악도 듣고 그랬다.
팔자가 늘어졌다.
마그밀을 먹었는 데도 소식이 없다.
배가 부글부글 끓기만 하고, 변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화장실을 가야할 것 같은 분위긴데,
담배가 너무 그립다.
결국은 한 대 물고 화장실에 앉았다.
거의 다 타들어갈 무렵, 이것도 실패로구나, 하는데
순간 쏟아진다.
치질의 통증에도 아랑곳없이 속이 시원하다.
담배 없이 화장실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올까? 그런 날이..
7월 10일
이제 보식도 끝이 나고 자연식 위주로 식사를 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치질 떄문에 해피 님이 권하신 대로 다시 효소단식을 해볼까 생각 중이다.
효소가 올 때가 됐는데..
15일부터 시작하면 될 거 같다.
내일은 회의가 있어 서울 나갔다 와야 하고,
15일 전까지 일 좀 마무리 해놓고,
이 달 말까지 다시 15일 효소단식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
이 기회에 치질이 나을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커피는 끊었는데(예전에는 거의 하루에 10잔 넘게 마셨음) 담배는 끊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지만 정말이지 끊기도 힘들다.
잠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든가, 콱 막힌 생각들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든가, 복잡한 머리를 잠시 식힐 수 있다든가, 아,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해결이 날나는지..
일은 핑계다. 그런 생각을 안해보는 것은 아니지만,
자책하지 말자.
지금은 하루 한두 개피, 서너 개피, 그 정도다.
엄청나게 많이 줄였으니 최대라고 해도 반갑 이상은 피지 않도록 하자.
이쯤해서 타협을 하자.
다음 다음 다음 단식도 있으니까..
몸무게는 58-59에서 거의 멈췄다.
그런데도 몸의 모양은, 이를테면 허리선이라든지, 허벅지 둘레라든지, 하는 곳은 빠진 것 같다. 바지를 입어보면 알 수 있다.
거의 예전의 몸무게를 되찾았는 데도 빠진 것이 분명하다.
기계가 잘못됐나?
오늘은 장날이다.
남편과 함께 장구경을 나섰다.
인절미도 사먹고 찐옥수수도 먹었다.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었다.
비름이며, 아욱이며, 호박잎, 싱싱한 상치, 오이 당근, 감자...
장바구니에 예전보다 훨씬 많은 채소류가 담겼다.
그동안 고생한 남편을 위해 우럭도 샀다.
매운탕의 유혹에 넘어 가지 않을 자신이 있다며, 큰소리 쳤지만 막상 끓이면 어떨지,,
그래도 입안이 따가워서 많이 먹지는 못할 것이다.
후두둑 비가 쏟아진다.
장꾼들의 얼굴이 엉망이다.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니 부침개가 생각난다.
남편이 이제 부침개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한다.
식용유 때문에 안된다고, 앞으로 우리집에 식용유 넣은 음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거라고 했더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
해피 님께서 올려놓은 글을 읽어 본 터라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더니, 역시 정보는 계속 업데이트 돼야 한단다. 자기가 단식할 때는 책에 그런 말이 없었단다.
부침개 대신 사온 감자를 쪄서 먹었다.
따끈한 꿀차도 마시고..
그래도 입이 심심하다.
원래 군것질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인데, 이상하다.
아침을 꼬박꼬박 먹는 것도 그렇고,
어째야 하나? 세 끼 식사를 계속 해야 하나?
몸이 원하는 대로 따르자, 생각은 하고 있지만 위가 약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생각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내 몸이 원하는 코드를 정확히 읽어내지 못함이 속상하다.
하지만 한 번의 단식으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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