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하나 읽고 가세요~~
저도 올해 언니랑 주말농장을 신청하였답니다. 10평에 시금치, 무, 배추, 상추.. 2주전에 심어놨는데 어제 가보신 00분말씀이 땅이 말라 다른건 새싹이 안돋고 시금치만 뾰족히 올라왔다고 그러시는군요~~
주변에 알지못하는 주말농장 프로그램이 많이 있습니다.
가꾸어 먹는 보람을 느껴보세요~~
*^^* __나나 올림
**제목: 한 해 농사 잘 지었습니다**
글, 사진 아우름지기 장 원
콩 심은 데 콩 났고 팥 심은 데 팥 났고 뿌린 대로 거두었고 땀흘린 만큼 거두었다. 그런데 분명히 심었는데도 나지 않아 마지막까지 우리 가족을 애태우게 만든 것이 있다. 느타리버섯이다. 느타리버섯은 느티나무를 약 20센티미터 크기로 잘라 그 둥치 윗부분에 종균과 톱밥을 비벼 발라 음습한 곳에 심어 놓고 수확을 그냥 기다리면 되는 것. 녹색연합이 금산 건천리에 만들고 있는 생태마을로 올 봄에 이사 들어간 정효숙, 안영철 젊은 30대 부부에게 두 둥치를 얻어다가 우리 집 뒤란에 6월쯤 심었는데, 다른 집에서는 다 났는데 우리 것만 나지 않아 애를 태우더니 드디어, 오늘 11월 3일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정확히 일 주일 전부터 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일찍 버섯을 처음 땄는데 얼마나 뭉게뭉게 소담스럽게 열렸던지. 느타리, 참 아름다운 이름, 왜 그 이름이 느타리일까? 느티나무를 몸체로 해서 자란다고 이름도 느타리인가? 느타리버섯은 국에 넣어 끓여먹어도 맛있지만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먹으면 진짜 맛있다. 내년에는 한 열 둥치쯤 해야지. 그리고 참나무에다 키우는 표고도 해야지. 송이나 능이나 싸리 버섯은 산에서 얻으면 되고, 지금 내 마음은 온통 버섯밭.
아름다운 젊은 부부가 도란도란 살고 있는 건천리엔 버들치도 있고 톱사슴벌레도 있고 회화나무도 있고 건천분교도 있다. 고추농사도 하고 벼농사도 하고 토종꿀 농사도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곳의 압권은 감나무다. 동네 초입서부터 붉은 감이 열렸는데 감의 주산지인 영동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이다. 온 동네에 큰 감나무고 심지어는 깊은 산속까지 감나무다. 감은 또 얼마나 빨갛게 많이 열리는지 제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가지가 부러지기도 한다. 감을 따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니 온 동네가 붉은 감꽃이다. 희노란 감꽃이 떨어질 때 그 떨어지는 몸짓이 하도 아득하여 한 도(道)를 얻는 사람이 더러 있다던데, 이 붉디붉은 홍시 감꽃은 언제까지나 매달려 있으니 만유척력(萬有斥力)을 보이고자 함인가 아니면 도(道)를 희롱하고자 함인가. 우리 가족도 주말을 이용해서 그 곳에 감 따러갔다. 한 천 개쯤 땄나? 도(道)는 하나도 못 따고 감만 땄다. 홍시는 홍시대로 짚을 켜켜로 넣어가면서 상자에 잘 담아 놓고, 곶감할 것은 잘 깎아서 주렁주렁 처마 밑에 매달아 놓고, 또 좀 상하거나 터진 것은 모아 감식초를 만들기 위해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 “한겨울에도 오시라. 곶감도 있고 차디찬 홍시도 있습니다. 광 속에서 눈 속에서 막 꺼내 드리겠습니다.” 아, 가을 되니까 찬서리 내리니까 오히려 풍성해지는 시골, 내가 시골로 참 잘 들어왔지. 올해는 감 먹을거리 준비를 열심히 했지만 내년부턴 감나무에서 도(道)도 따볼 것이다. 어느 정도 감잡았으니까 말이다. 이웃 마을 건천리 그 많은 감나무들 밑에 자리를 펴고 감꽃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 쏟아지는 감꽃비 속에서 아득히 흘러 찰나와 억겁을 부여잡고 바로 그 꽃머리 화두(花頭)를 잡고 내 남은 생의 의미를 한번 걸어보는 거다.
올 한 해 농사를 결산하면서 우리 도라지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완전히 개농사 지었다. 아, 이것이 그래도 명색이 ‘쉬츠’ 순종인데 시골 와서 밖에 키웠더니 그만 잡종을 낳고 말았으니. 열린 생태계를 지향한답시고 싸립문을 늘 열어놓았는데, 그 열린 문으로 동네 개들이 개같이 들락날락하더니 기어코 개판을 치고 말았다. 수태 기간 동안 병원에 데려가서 동종의 수놈하고 신방을 차려 주었는데도, 아뿔사, 잡종강세라더니 그만 잡종이 태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잡종이 좋다. 잡초도 좋고 잡것도 좋고 잡채도 맛있다. 「작아」도 잡지 아닌가. 어쨌든 우리의 하얀색 백도라지가 형형색색의 새끼 세 마리를 낳았는데 한 마리는 낳자마자 죽고 두 마리가 잘 크고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이 동네에서 크고 자라 제 동네 개 생태계를 다양하게 하는데 이바지하기 바란다. 시골에는 개가 많아야 한다. 특히 잡종 똥개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내 지론이다. 이 도라지가 평소에 풀어놓으면 그렇게 닭들을 못살게 군다. 우리 닭들은 순 토종닭이 아니라 그런지 지붕 위로 날아 올라가지도 못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속담을 무색하게 만들곤 하는데, 이 놈들은 올 봄, 금산 장에서 병아리를 사다 키운 것이다. 무럭무럭 잘 커서 추석 지난 이후부터 알을 낳기 시작하고 있다. 다소곳 암탉 여섯 마리에 위풍당당 장닭 한 마린데 어울려 잘 산다. 보통 장닭 한 마리에 암탉 예닐곱 마리가 생태적으로 적당하다고 한다. 이것들이 온갖 싱싱한 푸성귀 먹으면서 무공해 유정란을 생산하고 있다. 여섯 마리가 번갈아 낳는데 하루에 세 개 정도의 알을 거둔다. 노른자가 두 개인 쌍알도 자주 나오는데 아마도 한 놈이 계속 낳는 것 같다. 닭이 처음 낳는 알들을 초란(初卵)이라고 하는데, 크기가 보통 알들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고 모양도 날씬한 계란형이 잘 안 나오고 때로는 울퉁불퉁하기까지 하다. 껍질도 연약하기 짝이 없다. 한 달쯤 지나니까 제 크기 제 모습을 갖추는 것 같다. 집에 놀러오시는 분들께 생계란 하나씩 드리면 다들 참 좋아하신다. 40대 이상의 어른들은 다 날계란 먹을 줄을 안다. 젓가락으로 계란 아래위를 톡톡 쳐서 작은 구멍을 낸 다음 후루룩 빨아먹는다. 이제 추수 끝이라 짚이 나오니 꾸러미를 만들어서 선물도 할 것이다. 일주일에 20여 개를 우리 식구들이 다 먹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이 닭들이 알은 잘 낳는데 그 알을 품을 줄 모른다. 심지어는 낳은 알을 그 자리에서 다 쪼아 먹어버리기까지 한다. 껍질도 안 남기고. 그것은 충격이었다. 제 알을 품을 줄 모르는 에미닭, 지붕 위로 날아오르지도 못하는 다 큰 어른닭, 시도 때도 없이 울어쌓는 장닭, 인간들이 닭들을 알 낳는 기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토종닭은 날기도 잘 날고 알도 제대로 품는다고 한다. 오직 인간의 편리와 욕망 충족을 위해 다른 생물 그리고 무생물들을 무차별로 변형시키고 약탈하는 인간들에게 화 있을진저. 모쪼록 우리 닭들은 야생의 닭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날기도 잘 날고 알도 제대로 품을 줄 알았으면 좋겠다.
채소농사도 좀 짚어보자. 올 봄부터 가을까지 시금치, 상추, 배추, 갓, 열무, 청경채, 들깨, 콩, 토란, 토마토, 방울토마토, 감자, 고구마, 땅콩, 당귀, 호박, 박, 당근, 가지, 오이, 수박, 참외, 방아, 부추, 파, 치커리, 쑥갓, 고추, 옥수수 등을 심었다. 씨나 모종은 장에 가서 구해 오기도 하고 동네에서 얻기도 하고, 키우는 법은 책을 보기도 하고 역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배우기도 하며 하여튼 열심히 텃밭농사를 지었다. 우리 각시가. 그렇다고 내가 뭐 일을 전혀 안한 것은 아니다. 나는 주로 이래라 저래라 얘기하고, 수확에 더 많이 신경을 쓰고, 계란이나 호박 같은 수확물을 나눠 줄 때 아까워서 뭐라뭐라 간섭하기도 하고, 동네방네 온 전국을 다니면서 자랑하고…. 어쨌든 내가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텃밭농사도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성급한 마음에 3월 들어 상추, 시금치, 쑥갓 씨를 뿌렸더니 씨앗이 트지 않아서 4월에 다시 뿌렸다. 이어서 파, 열무, 치커리, 청경채, 부추를 심고 정분이네서 씨감자를 얻어 땅에 묻었다. 5월에는 오이, 가지, 토마토, 고추, 박, 수박, 참외 등의 모종을 장에 가서 구해다 심었다. 옥수수, 호박, 땅콩은 옆집 할머니께 씨를 얻어서 심었고. 6월에는 고구마를 심고 7월에는 벌써 감자를 캤다. 너무 빨리 캐서 아직 알이 다 들지 않은 것 같았다. 이 때쯤부터 찰옥수수도 따서 쪄먹었다. 8월에 알타리 무 파종을 했으나 여린 잎이 나자마자 달팽이와 벌레들이 다 먹어치웠다. 목초액을 얻어다 뿌리고 담배잿물을 만들어 뿌렸는데 별무효과. 어떤 분이 오줌똥 거름을 많이 주면 된다고 해서 내년에는 시도해 볼 예정이다. 8월 20일경 김장 배추 갈았다. 그러나 실패, 씨앗을 김장 배추 아닌 것으로 잘못 선택한 결과. 호박과 박농사는 대성공, 추석 때 누렁이 호박 들고 부산 고향집에 가서 생색내는데 성공했다. 추석 지나고 뿌리에 주저리주저리 매달린 땅콩 수확, 굼벵이가 많이 먹었지만 우리도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이어서 10월의 고구마 캐기, 비교적 알이 잘 들었다. 노란 고구만데 참 맛있다. 찬서리 내린 후 호박을 다 거두었는데 몇 개는 얼어버려서 안타깝다. 정말. 농사 지어보시라.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이제 뿌린대로 다 거두고 마늘 농사가 남았다. 그 맵고 단단한 것 잘 키워내리라. 내년 농사를 위해 닭똥, 깻묵, 볏짚, 왕겨, 한약재 찌꺼기, 풀 등을 썩히고 있다. 퇴비도 만들고 액비도 만들 것이다. 아 참, 내년에는 네 식구가 먹고 살 수 있다는 다랑이논 두어 마지기 구해서 벼농사도 할 생각이다. 왠지 어릴 때부터 시골 가면 광에 나락 가마니 쌓여 있는 것이 그렇게 부러웠다. 그래서 이번에 논농사는 못했지만 다른 집에서 1등급 수매가인 55,090원 주고 나락 네 가마 사서 대청마루 한가운데 쟁여놓았다. 볼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넉넉하고 푸짐한지. 살 맛 난다. 등따시고 배부르면 최고인데 등은 따실지 모르겠다. 옛날집이라 워낙 우풍이 세서. 문풍지도 달고 수도꼭지도 싸매고 하나 하나 겨울채비를 해 나가야지. 한옥에 산다는 것은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일인 것 같다. 이른바 동선이 길다는 것이다. 그래야 몸에 좋지. 또 추울 때는 좀 춥게 사는 것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리라.
채 일년도 안 되었지만 나는 시골에 사는 것이 너무 좋다. 우리 가족들도 좋아한다. 각시는 마을 부녀회 일에 열심이고, 그러고 보니 오늘 우리 집에서 부녀회 열린다고 각시가 점심 준비한다고 했다. 우리 각시는 동네 사람들하고 깊은 산에 능이버섯 따러 갔다가 차에서 굴러 떨어져 죽을 뻔했다. 나도 같이 갔는데 진짜 큰일 날 뻔했다. 머리를 돌에 부딪쳤으니. 그런 사태가 발생하니 각설하고 각시 귀한 줄 알겠더이다. 애들도 시골의 중학교, 초등학교에 적응해서 잘 다니고 있다. 교육이니 문화니 이것저것 따지면 평생 못 들어온다. 올 겨울에 건천리로 뜻을 같이 하는 젊은 부부 두 쌍이 더 들어온다. 김순희와 이동고, 해솔이와 갓난 아이, 전현주와 최홍기, 다섯살 난 세리가 바로 그들이다. 용기 있는 젊은이들, 아름다운 젊은이들, 그대들의 앞날에 축복 있을진저. 귀농을 하든 귀본을 하든 삶의 본디 자리를 찾아가자. 같이 살자. 모듬살이로 더부살이로 같이 살자.
내가 좋아하는 백석 시인의 시 한 편 소개합니다.
귀농(歸農)
백구둔(白拘屯)의 눈 녹이는 밭 가운데 땅 풀리는 밭 가운
데촌부자 노왕(老王)하고 같이 서서
밭최뚝에 즘부러진 땅버들의 버들개지 피여나는 데서
볕은 장글장글 따사롭고 바람은 솔솔 보드라운데
나는 땅임자 노왕한테 석상디기 밭을 얻는다
노왕은 집에 말과 나귀며 오리에 닭도 우을거리고
고방엔 그득히 감자에 콩곡석도 들여 쌓이고
노왕은 채매도 힘이 들고 하루종일 백령조(百鈴鳥) 소리나 들으려고
밭을 오늘 나한테 주는 것이고.나는 이젠 귀치않은 측량(測量)도 문서도 싫증이 나고
낮에는 마음놓고 낮잠도 한잠 자고 싶어서
아전 노릇을 그만두고 밭을 노왕한테 얻는 것이다
날은 챙챙 좋기도 좋은데
눈도 녹이며 술렁거리고 버들도 잎트며 수선거리고
저 한쪽 마을에는 마돗에 닭 개 즘생도 들떠들고
또 아이어른 행길에 뜨락에 사람도 웅성웅성 흥성거려
나는 가슴이 이 무슨 흥에 벅차오며
이 봄에는 이 밭에 감자 강냉이 수박에 오이며 당콩에
마늘과 파도 심그리라 생각한다.
수박이 열면 수박을 먹으며 팔며
감자가 앉으면 감자를 먹으며 팔며
까막까치난 두더쥐 돗벌기가 와서 먹으면 먹는 대로 두어두고
도적이 조금 걷어가도 걷어가는 대로 두어두고
아, 노왕, 나는 이렇게 생각하노라
나는 노왕을 보고 웃어 말한다
이리하여 노왕은 밭을 주어 마음이 한가하고
나는 밭을 얻어 마음이 편안하고
디퍽디퍽 눈을 밟으며 터벅터벅 흙도 덮으며
사물사물 해볕은 목덜미에 간지로워서
노왕은 팔장을 끼고 이랑을 걸어
나는 뒷짐을 지고 고랑을 걸어
밭을 나와 밭뚝을 돌아 도랑을 건너 행길을 돌아
지붕에 바람벽에 울바주에 볕살 쇠리쇠리한 마을을 가리키며
노왕은 나귀를 타고 앞에 가고
나는 노새를 타고 뒤에 따르고
마을끌 충왕묘(蟲王廟)에 충왕을 찾아뵈려 가는 길이다.
토산묘(土神廟)에 토신도 찾아뵈려 가는 길이다.
저도 올해 언니랑 주말농장을 신청하였답니다. 10평에 시금치, 무, 배추, 상추.. 2주전에 심어놨는데 어제 가보신 00분말씀이 땅이 말라 다른건 새싹이 안돋고 시금치만 뾰족히 올라왔다고 그러시는군요~~
주변에 알지못하는 주말농장 프로그램이 많이 있습니다.
가꾸어 먹는 보람을 느껴보세요~~
*^^* __나나 올림
**제목: 한 해 농사 잘 지었습니다**
글, 사진 아우름지기 장 원
콩 심은 데 콩 났고 팥 심은 데 팥 났고 뿌린 대로 거두었고 땀흘린 만큼 거두었다. 그런데 분명히 심었는데도 나지 않아 마지막까지 우리 가족을 애태우게 만든 것이 있다. 느타리버섯이다. 느타리버섯은 느티나무를 약 20센티미터 크기로 잘라 그 둥치 윗부분에 종균과 톱밥을 비벼 발라 음습한 곳에 심어 놓고 수확을 그냥 기다리면 되는 것. 녹색연합이 금산 건천리에 만들고 있는 생태마을로 올 봄에 이사 들어간 정효숙, 안영철 젊은 30대 부부에게 두 둥치를 얻어다가 우리 집 뒤란에 6월쯤 심었는데, 다른 집에서는 다 났는데 우리 것만 나지 않아 애를 태우더니 드디어, 오늘 11월 3일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정확히 일 주일 전부터 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일찍 버섯을 처음 땄는데 얼마나 뭉게뭉게 소담스럽게 열렸던지. 느타리, 참 아름다운 이름, 왜 그 이름이 느타리일까? 느티나무를 몸체로 해서 자란다고 이름도 느타리인가? 느타리버섯은 국에 넣어 끓여먹어도 맛있지만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먹으면 진짜 맛있다. 내년에는 한 열 둥치쯤 해야지. 그리고 참나무에다 키우는 표고도 해야지. 송이나 능이나 싸리 버섯은 산에서 얻으면 되고, 지금 내 마음은 온통 버섯밭.
아름다운 젊은 부부가 도란도란 살고 있는 건천리엔 버들치도 있고 톱사슴벌레도 있고 회화나무도 있고 건천분교도 있다. 고추농사도 하고 벼농사도 하고 토종꿀 농사도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곳의 압권은 감나무다. 동네 초입서부터 붉은 감이 열렸는데 감의 주산지인 영동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이다. 온 동네에 큰 감나무고 심지어는 깊은 산속까지 감나무다. 감은 또 얼마나 빨갛게 많이 열리는지 제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가지가 부러지기도 한다. 감을 따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니 온 동네가 붉은 감꽃이다. 희노란 감꽃이 떨어질 때 그 떨어지는 몸짓이 하도 아득하여 한 도(道)를 얻는 사람이 더러 있다던데, 이 붉디붉은 홍시 감꽃은 언제까지나 매달려 있으니 만유척력(萬有斥力)을 보이고자 함인가 아니면 도(道)를 희롱하고자 함인가. 우리 가족도 주말을 이용해서 그 곳에 감 따러갔다. 한 천 개쯤 땄나? 도(道)는 하나도 못 따고 감만 땄다. 홍시는 홍시대로 짚을 켜켜로 넣어가면서 상자에 잘 담아 놓고, 곶감할 것은 잘 깎아서 주렁주렁 처마 밑에 매달아 놓고, 또 좀 상하거나 터진 것은 모아 감식초를 만들기 위해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 “한겨울에도 오시라. 곶감도 있고 차디찬 홍시도 있습니다. 광 속에서 눈 속에서 막 꺼내 드리겠습니다.” 아, 가을 되니까 찬서리 내리니까 오히려 풍성해지는 시골, 내가 시골로 참 잘 들어왔지. 올해는 감 먹을거리 준비를 열심히 했지만 내년부턴 감나무에서 도(道)도 따볼 것이다. 어느 정도 감잡았으니까 말이다. 이웃 마을 건천리 그 많은 감나무들 밑에 자리를 펴고 감꽃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 쏟아지는 감꽃비 속에서 아득히 흘러 찰나와 억겁을 부여잡고 바로 그 꽃머리 화두(花頭)를 잡고 내 남은 생의 의미를 한번 걸어보는 거다.
올 한 해 농사를 결산하면서 우리 도라지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완전히 개농사 지었다. 아, 이것이 그래도 명색이 ‘쉬츠’ 순종인데 시골 와서 밖에 키웠더니 그만 잡종을 낳고 말았으니. 열린 생태계를 지향한답시고 싸립문을 늘 열어놓았는데, 그 열린 문으로 동네 개들이 개같이 들락날락하더니 기어코 개판을 치고 말았다. 수태 기간 동안 병원에 데려가서 동종의 수놈하고 신방을 차려 주었는데도, 아뿔사, 잡종강세라더니 그만 잡종이 태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잡종이 좋다. 잡초도 좋고 잡것도 좋고 잡채도 맛있다. 「작아」도 잡지 아닌가. 어쨌든 우리의 하얀색 백도라지가 형형색색의 새끼 세 마리를 낳았는데 한 마리는 낳자마자 죽고 두 마리가 잘 크고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이 동네에서 크고 자라 제 동네 개 생태계를 다양하게 하는데 이바지하기 바란다. 시골에는 개가 많아야 한다. 특히 잡종 똥개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내 지론이다. 이 도라지가 평소에 풀어놓으면 그렇게 닭들을 못살게 군다. 우리 닭들은 순 토종닭이 아니라 그런지 지붕 위로 날아 올라가지도 못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속담을 무색하게 만들곤 하는데, 이 놈들은 올 봄, 금산 장에서 병아리를 사다 키운 것이다. 무럭무럭 잘 커서 추석 지난 이후부터 알을 낳기 시작하고 있다. 다소곳 암탉 여섯 마리에 위풍당당 장닭 한 마린데 어울려 잘 산다. 보통 장닭 한 마리에 암탉 예닐곱 마리가 생태적으로 적당하다고 한다. 이것들이 온갖 싱싱한 푸성귀 먹으면서 무공해 유정란을 생산하고 있다. 여섯 마리가 번갈아 낳는데 하루에 세 개 정도의 알을 거둔다. 노른자가 두 개인 쌍알도 자주 나오는데 아마도 한 놈이 계속 낳는 것 같다. 닭이 처음 낳는 알들을 초란(初卵)이라고 하는데, 크기가 보통 알들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고 모양도 날씬한 계란형이 잘 안 나오고 때로는 울퉁불퉁하기까지 하다. 껍질도 연약하기 짝이 없다. 한 달쯤 지나니까 제 크기 제 모습을 갖추는 것 같다. 집에 놀러오시는 분들께 생계란 하나씩 드리면 다들 참 좋아하신다. 40대 이상의 어른들은 다 날계란 먹을 줄을 안다. 젓가락으로 계란 아래위를 톡톡 쳐서 작은 구멍을 낸 다음 후루룩 빨아먹는다. 이제 추수 끝이라 짚이 나오니 꾸러미를 만들어서 선물도 할 것이다. 일주일에 20여 개를 우리 식구들이 다 먹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이 닭들이 알은 잘 낳는데 그 알을 품을 줄 모른다. 심지어는 낳은 알을 그 자리에서 다 쪼아 먹어버리기까지 한다. 껍질도 안 남기고. 그것은 충격이었다. 제 알을 품을 줄 모르는 에미닭, 지붕 위로 날아오르지도 못하는 다 큰 어른닭, 시도 때도 없이 울어쌓는 장닭, 인간들이 닭들을 알 낳는 기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토종닭은 날기도 잘 날고 알도 제대로 품는다고 한다. 오직 인간의 편리와 욕망 충족을 위해 다른 생물 그리고 무생물들을 무차별로 변형시키고 약탈하는 인간들에게 화 있을진저. 모쪼록 우리 닭들은 야생의 닭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날기도 잘 날고 알도 제대로 품을 줄 알았으면 좋겠다.
채소농사도 좀 짚어보자. 올 봄부터 가을까지 시금치, 상추, 배추, 갓, 열무, 청경채, 들깨, 콩, 토란, 토마토, 방울토마토, 감자, 고구마, 땅콩, 당귀, 호박, 박, 당근, 가지, 오이, 수박, 참외, 방아, 부추, 파, 치커리, 쑥갓, 고추, 옥수수 등을 심었다. 씨나 모종은 장에 가서 구해 오기도 하고 동네에서 얻기도 하고, 키우는 법은 책을 보기도 하고 역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배우기도 하며 하여튼 열심히 텃밭농사를 지었다. 우리 각시가. 그렇다고 내가 뭐 일을 전혀 안한 것은 아니다. 나는 주로 이래라 저래라 얘기하고, 수확에 더 많이 신경을 쓰고, 계란이나 호박 같은 수확물을 나눠 줄 때 아까워서 뭐라뭐라 간섭하기도 하고, 동네방네 온 전국을 다니면서 자랑하고…. 어쨌든 내가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텃밭농사도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성급한 마음에 3월 들어 상추, 시금치, 쑥갓 씨를 뿌렸더니 씨앗이 트지 않아서 4월에 다시 뿌렸다. 이어서 파, 열무, 치커리, 청경채, 부추를 심고 정분이네서 씨감자를 얻어 땅에 묻었다. 5월에는 오이, 가지, 토마토, 고추, 박, 수박, 참외 등의 모종을 장에 가서 구해다 심었다. 옥수수, 호박, 땅콩은 옆집 할머니께 씨를 얻어서 심었고. 6월에는 고구마를 심고 7월에는 벌써 감자를 캤다. 너무 빨리 캐서 아직 알이 다 들지 않은 것 같았다. 이 때쯤부터 찰옥수수도 따서 쪄먹었다. 8월에 알타리 무 파종을 했으나 여린 잎이 나자마자 달팽이와 벌레들이 다 먹어치웠다. 목초액을 얻어다 뿌리고 담배잿물을 만들어 뿌렸는데 별무효과. 어떤 분이 오줌똥 거름을 많이 주면 된다고 해서 내년에는 시도해 볼 예정이다. 8월 20일경 김장 배추 갈았다. 그러나 실패, 씨앗을 김장 배추 아닌 것으로 잘못 선택한 결과. 호박과 박농사는 대성공, 추석 때 누렁이 호박 들고 부산 고향집에 가서 생색내는데 성공했다. 추석 지나고 뿌리에 주저리주저리 매달린 땅콩 수확, 굼벵이가 많이 먹었지만 우리도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이어서 10월의 고구마 캐기, 비교적 알이 잘 들었다. 노란 고구만데 참 맛있다. 찬서리 내린 후 호박을 다 거두었는데 몇 개는 얼어버려서 안타깝다. 정말. 농사 지어보시라.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이제 뿌린대로 다 거두고 마늘 농사가 남았다. 그 맵고 단단한 것 잘 키워내리라. 내년 농사를 위해 닭똥, 깻묵, 볏짚, 왕겨, 한약재 찌꺼기, 풀 등을 썩히고 있다. 퇴비도 만들고 액비도 만들 것이다. 아 참, 내년에는 네 식구가 먹고 살 수 있다는 다랑이논 두어 마지기 구해서 벼농사도 할 생각이다. 왠지 어릴 때부터 시골 가면 광에 나락 가마니 쌓여 있는 것이 그렇게 부러웠다. 그래서 이번에 논농사는 못했지만 다른 집에서 1등급 수매가인 55,090원 주고 나락 네 가마 사서 대청마루 한가운데 쟁여놓았다. 볼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넉넉하고 푸짐한지. 살 맛 난다. 등따시고 배부르면 최고인데 등은 따실지 모르겠다. 옛날집이라 워낙 우풍이 세서. 문풍지도 달고 수도꼭지도 싸매고 하나 하나 겨울채비를 해 나가야지. 한옥에 산다는 것은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일인 것 같다. 이른바 동선이 길다는 것이다. 그래야 몸에 좋지. 또 추울 때는 좀 춥게 사는 것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리라.
채 일년도 안 되었지만 나는 시골에 사는 것이 너무 좋다. 우리 가족들도 좋아한다. 각시는 마을 부녀회 일에 열심이고, 그러고 보니 오늘 우리 집에서 부녀회 열린다고 각시가 점심 준비한다고 했다. 우리 각시는 동네 사람들하고 깊은 산에 능이버섯 따러 갔다가 차에서 굴러 떨어져 죽을 뻔했다. 나도 같이 갔는데 진짜 큰일 날 뻔했다. 머리를 돌에 부딪쳤으니. 그런 사태가 발생하니 각설하고 각시 귀한 줄 알겠더이다. 애들도 시골의 중학교, 초등학교에 적응해서 잘 다니고 있다. 교육이니 문화니 이것저것 따지면 평생 못 들어온다. 올 겨울에 건천리로 뜻을 같이 하는 젊은 부부 두 쌍이 더 들어온다. 김순희와 이동고, 해솔이와 갓난 아이, 전현주와 최홍기, 다섯살 난 세리가 바로 그들이다. 용기 있는 젊은이들, 아름다운 젊은이들, 그대들의 앞날에 축복 있을진저. 귀농을 하든 귀본을 하든 삶의 본디 자리를 찾아가자. 같이 살자. 모듬살이로 더부살이로 같이 살자.
내가 좋아하는 백석 시인의 시 한 편 소개합니다.
귀농(歸農)
백구둔(白拘屯)의 눈 녹이는 밭 가운데 땅 풀리는 밭 가운
데촌부자 노왕(老王)하고 같이 서서
밭최뚝에 즘부러진 땅버들의 버들개지 피여나는 데서
볕은 장글장글 따사롭고 바람은 솔솔 보드라운데
나는 땅임자 노왕한테 석상디기 밭을 얻는다
노왕은 집에 말과 나귀며 오리에 닭도 우을거리고
고방엔 그득히 감자에 콩곡석도 들여 쌓이고
노왕은 채매도 힘이 들고 하루종일 백령조(百鈴鳥) 소리나 들으려고
밭을 오늘 나한테 주는 것이고.나는 이젠 귀치않은 측량(測量)도 문서도 싫증이 나고
낮에는 마음놓고 낮잠도 한잠 자고 싶어서
아전 노릇을 그만두고 밭을 노왕한테 얻는 것이다
날은 챙챙 좋기도 좋은데
눈도 녹이며 술렁거리고 버들도 잎트며 수선거리고
저 한쪽 마을에는 마돗에 닭 개 즘생도 들떠들고
또 아이어른 행길에 뜨락에 사람도 웅성웅성 흥성거려
나는 가슴이 이 무슨 흥에 벅차오며
이 봄에는 이 밭에 감자 강냉이 수박에 오이며 당콩에
마늘과 파도 심그리라 생각한다.
수박이 열면 수박을 먹으며 팔며
감자가 앉으면 감자를 먹으며 팔며
까막까치난 두더쥐 돗벌기가 와서 먹으면 먹는 대로 두어두고
도적이 조금 걷어가도 걷어가는 대로 두어두고
아, 노왕, 나는 이렇게 생각하노라
나는 노왕을 보고 웃어 말한다
이리하여 노왕은 밭을 주어 마음이 한가하고
나는 밭을 얻어 마음이 편안하고
디퍽디퍽 눈을 밟으며 터벅터벅 흙도 덮으며
사물사물 해볕은 목덜미에 간지로워서
노왕은 팔장을 끼고 이랑을 걸어
나는 뒷짐을 지고 고랑을 걸어
밭을 나와 밭뚝을 돌아 도랑을 건너 행길을 돌아
지붕에 바람벽에 울바주에 볕살 쇠리쇠리한 마을을 가리키며
노왕은 나귀를 타고 앞에 가고
나는 노새를 타고 뒤에 따르고
마을끌 충왕묘(蟲王廟)에 충왕을 찾아뵈려 가는 길이다.
토산묘(土神廟)에 토신도 찾아뵈려 가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