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집은 온통 풀꽃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대문 없는 집 앞에는 앵두꽃이 하얗게 피어있고 마당으로 들어서는 나무 계단 틈바구니에도 풀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뜰 마루 아래에서부터 부엌 문 앞 틈새며 손발을 씻는 세숫물가 돌쩌귀에 이르기까지 냉이꽃이며, 민들레꽃이 곱게 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집 주변 곳곳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풀꽃들이 피었습니다. 뒷산에는 진달래꽃이며, 싸리나무 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올랐습니다.
<IMG border=0 src="http://www.ohmynews.com/down/images/1/sosuyong_101806_4[1].jpg" width="100%">
ⓒ2003 송성영
아주 작은 풀꽃들은 무관심하게 바라보면 그냥 그렇고 그런 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 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아름답습니다. 특히 카메라로 클로즈업해서 보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풀꽃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물들을 화면 가득 잡아놓고 보면 꽃도 피우지 못하는 풀 한 포기, 발 밑에서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 조차도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화창한 봄 날, 아내는 작은아이까지 학교에 보내고 나니 부쩍 여유 만만해 졌습니다. 아침부터 이젤을 펼쳐놓고 그림을 그립니다. 풀꽃 그림을 그립니다.
“내가 처음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할 때, 이것저것 풀꽃들을 보이는 대로 다 그렸는데 지금이 꼭 그때 같네...”
40줄을 넘긴 아내는 그림을 통해 10대 소녀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내가 풀꽃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덩달아 마음이 편해집니다. 꽃 중에서도 풀꽃을 유난히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공연히 기분이 좋아 아내 주변을 오락가락 하다가 매듭져 있는 지난 일들을 기분 좋게 툭 하니 풀어놓습니다.
“어이그, 잡초라면서 죄다 뽑아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그게 좋다고 한가롭게 그림까지 다 그리구 있으니 당신도 이제 한소식 했구먼, 하산해도 되겠어...”
아내는 언제 성깔을 부렸냐는 듯이 집 앞 앵두꽃처럼 환하게 웃기만 합니다. 옛말하고 살 때가 있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 듯 싶습니다. 잡초를 뽑지 않는다며 내게 신경질을 내곤했던 그 아내였나 싶을 정도로 이제 아내 또한 풀꽃을 좋아합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았던 소녀처럼 풀꽃이 아주 좋답니다.
아내의 화첩에 담겨 있는 냉이 꽃이며, 민들레꽃들은 이곳에 처음 이사올 무렵의 아내에겐 귀찮은 잡초에 불과했었습니다. 꽃도 피우기 전에 보이는 대로 죄다 뽑아버려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뽑아도 뽑아도 다시 솟아오르는 징글맞은 잡초였습니다. 어느 해인가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줄 빤히 알면서도 제초제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아내에게도 이제 태평성대를 누릴 만한 화창한 봄날이 찾아 왔나 봅니다. 요즘 또다시 생활비가 간당간당해지고 있지만 아내는 별로 걱정을 안 합니다. 사이비교주처럼 하늘이 알아서 다 먹고살게 해준다며 큰소리 탕탕 치던 내가 오히려 더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생활비가 단돈 몇 천 원이 전부였을 때도 태평했던 나는 아직 한달 생활비가 남아 있는데도 벌써부터 돈걱정을 시작했고, 아내는 철없는 소녀처럼 이젤을 펼쳐놓고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어야 할 판인데 아내는 풀꽃뿐만 아니라 저만치 돌담장 앞에서 화사하게 웃고 있는 복사꽃을 기분 좋게 그리고 있었습니다.
<IMG border=0 src="http://www.ohmynews.com/down/images/1/sosuyong_101806_4[2].jpg" width="100%">
ⓒ2003 송성영
결혼하기 전까지는 주로 비구상 그림을 통해 뭐가 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그림들을 암호문처럼 표현해 나갔던 아내, 당시 아내의 그림은 대형 캔버스만큼이나 거창했지만 힘겨운 세상살이에 마음은 헝클어지고 배배 꼬여 있었습니다.
세상살이가 고통스러울 때는 밟아 버리고, 꺾어 버리고, 뽑아 버리고 그것도 부족해 제초제를 쓰지 않는다고 버럭버럭 화를 냈던 아내였는데 이제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렇게 작고 사소한 풀꽃을 그리고 있지만 아내의 마음은 오히려 보다 넓게 확장되어 있었습니다.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진 게 없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넉넉해 졌습니다. 그렇게 아내의 넉넉해진 마음속에 작은 것들이 아름답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흔히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내 마음이 확장되어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 마음이 보다 넓게 확장되어 있기에 사물이 작게 보이는 것이고 또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요.
나는 그림 그리는 아내 옆에서 캠코더를 고정시켜 놓고 풀꽃을 잡아내고, 아내의 그림을 잡아냈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화면 가득 다가오는 풀꽃. 화면 가득 잡힌 그 작은 풀꽃들이 아름다운 것은 내가 그것들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풀꽃 세상이 온전하게 카메라 렌즈에 잡혔기 때문이었습니다. 화면을 통해 풀꽃들이 내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풀꽃뿐만 아니라 사람이든 사물이든 세상에 널려 있는 그 어떤 것들이 참말로 아름답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들을 가만히 되짚어보면 그것들은 대체로 내 품속으로 온전히 들어올 때입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듯이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꽃을 그리고 있는 아내의 마음은 아주 넉넉해 보입니다.
나는 아내의 그림을 엿보다가 그자리에 쪼그려 앉아 풀꽃을 보았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풀꽃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풀꽃에 대해...
꽃은 풀의 마음입니다.
풀은 꽃을 피워 그 마음을 내 보입니다.
그저 그런 하찮은 풀이 향기로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마음을 낼 수 있다는 것만큼이나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고 합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 꽃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꽃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꽃보다도 아름다운 마음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풀꽃이 내게 이릅니다.
온전히 아름다운 마음을 내라 이릅니다.
세상에 향기를 주는 사람이 되라 합니다.
세상에 향기를 주는 사람이 되었을 때만이
비로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퍼왔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요~! ^^ 아침에 이글 읽으니깐.. 참 좋네요~!
뜰 마루 아래에서부터 부엌 문 앞 틈새며 손발을 씻는 세숫물가 돌쩌귀에 이르기까지 냉이꽃이며, 민들레꽃이 곱게 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집 주변 곳곳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풀꽃들이 피었습니다. 뒷산에는 진달래꽃이며, 싸리나무 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올랐습니다.
<IMG border=0 src="http://www.ohmynews.com/down/images/1/sosuyong_101806_4[1].jpg" width="100%">
ⓒ2003 송성영
아주 작은 풀꽃들은 무관심하게 바라보면 그냥 그렇고 그런 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 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아름답습니다. 특히 카메라로 클로즈업해서 보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풀꽃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물들을 화면 가득 잡아놓고 보면 꽃도 피우지 못하는 풀 한 포기, 발 밑에서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 조차도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화창한 봄 날, 아내는 작은아이까지 학교에 보내고 나니 부쩍 여유 만만해 졌습니다. 아침부터 이젤을 펼쳐놓고 그림을 그립니다. 풀꽃 그림을 그립니다.
“내가 처음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할 때, 이것저것 풀꽃들을 보이는 대로 다 그렸는데 지금이 꼭 그때 같네...”
40줄을 넘긴 아내는 그림을 통해 10대 소녀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내가 풀꽃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덩달아 마음이 편해집니다. 꽃 중에서도 풀꽃을 유난히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공연히 기분이 좋아 아내 주변을 오락가락 하다가 매듭져 있는 지난 일들을 기분 좋게 툭 하니 풀어놓습니다.
“어이그, 잡초라면서 죄다 뽑아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그게 좋다고 한가롭게 그림까지 다 그리구 있으니 당신도 이제 한소식 했구먼, 하산해도 되겠어...”
아내는 언제 성깔을 부렸냐는 듯이 집 앞 앵두꽃처럼 환하게 웃기만 합니다. 옛말하고 살 때가 있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 듯 싶습니다. 잡초를 뽑지 않는다며 내게 신경질을 내곤했던 그 아내였나 싶을 정도로 이제 아내 또한 풀꽃을 좋아합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았던 소녀처럼 풀꽃이 아주 좋답니다.
아내의 화첩에 담겨 있는 냉이 꽃이며, 민들레꽃들은 이곳에 처음 이사올 무렵의 아내에겐 귀찮은 잡초에 불과했었습니다. 꽃도 피우기 전에 보이는 대로 죄다 뽑아버려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뽑아도 뽑아도 다시 솟아오르는 징글맞은 잡초였습니다. 어느 해인가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줄 빤히 알면서도 제초제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아내에게도 이제 태평성대를 누릴 만한 화창한 봄날이 찾아 왔나 봅니다. 요즘 또다시 생활비가 간당간당해지고 있지만 아내는 별로 걱정을 안 합니다. 사이비교주처럼 하늘이 알아서 다 먹고살게 해준다며 큰소리 탕탕 치던 내가 오히려 더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생활비가 단돈 몇 천 원이 전부였을 때도 태평했던 나는 아직 한달 생활비가 남아 있는데도 벌써부터 돈걱정을 시작했고, 아내는 철없는 소녀처럼 이젤을 펼쳐놓고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어야 할 판인데 아내는 풀꽃뿐만 아니라 저만치 돌담장 앞에서 화사하게 웃고 있는 복사꽃을 기분 좋게 그리고 있었습니다.
<IMG border=0 src="http://www.ohmynews.com/down/images/1/sosuyong_101806_4[2].jpg" width="100%">
ⓒ2003 송성영
결혼하기 전까지는 주로 비구상 그림을 통해 뭐가 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그림들을 암호문처럼 표현해 나갔던 아내, 당시 아내의 그림은 대형 캔버스만큼이나 거창했지만 힘겨운 세상살이에 마음은 헝클어지고 배배 꼬여 있었습니다.
세상살이가 고통스러울 때는 밟아 버리고, 꺾어 버리고, 뽑아 버리고 그것도 부족해 제초제를 쓰지 않는다고 버럭버럭 화를 냈던 아내였는데 이제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렇게 작고 사소한 풀꽃을 그리고 있지만 아내의 마음은 오히려 보다 넓게 확장되어 있었습니다.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진 게 없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넉넉해 졌습니다. 그렇게 아내의 넉넉해진 마음속에 작은 것들이 아름답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흔히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내 마음이 확장되어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 마음이 보다 넓게 확장되어 있기에 사물이 작게 보이는 것이고 또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요.
나는 그림 그리는 아내 옆에서 캠코더를 고정시켜 놓고 풀꽃을 잡아내고, 아내의 그림을 잡아냈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화면 가득 다가오는 풀꽃. 화면 가득 잡힌 그 작은 풀꽃들이 아름다운 것은 내가 그것들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풀꽃 세상이 온전하게 카메라 렌즈에 잡혔기 때문이었습니다. 화면을 통해 풀꽃들이 내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풀꽃뿐만 아니라 사람이든 사물이든 세상에 널려 있는 그 어떤 것들이 참말로 아름답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들을 가만히 되짚어보면 그것들은 대체로 내 품속으로 온전히 들어올 때입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듯이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꽃을 그리고 있는 아내의 마음은 아주 넉넉해 보입니다.
나는 아내의 그림을 엿보다가 그자리에 쪼그려 앉아 풀꽃을 보았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풀꽃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풀꽃에 대해...
꽃은 풀의 마음입니다.
풀은 꽃을 피워 그 마음을 내 보입니다.
그저 그런 하찮은 풀이 향기로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마음을 낼 수 있다는 것만큼이나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고 합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 꽃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꽃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꽃보다도 아름다운 마음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풀꽃이 내게 이릅니다.
온전히 아름다운 마음을 내라 이릅니다.
세상에 향기를 주는 사람이 되라 합니다.
세상에 향기를 주는 사람이 되었을 때만이
비로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퍼왔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요~! ^^ 아침에 이글 읽으니깐.. 참 좋네요~!
